퓨파퍄 retweeted
Replying to @pupapya
「タラって何?」と一瞬戸惑ったけど、考えてみたら玄関に鰯の頭とヒイラギの枝を飾る謎習俗を持つ日本も同じようなものだなと思って冷静になった
퓨파퍄 retweeted
원양어선 타는 남편의 남모를 고통
남편분은 선장임.
원양어선은 400일을 망망대해에 있어야함.
이후 180일은 휴식을 취한다고 함.
선장 연봉은 한화로 약 2억 5천만원정도.
하지만, 배 타기 전 와이프가 임신한상태
결국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출산 소식을 듣게 됨.
아이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게
마음 아프네요ㅜㅜ😭
나의 아버지는 88년도에 익산에서 치대에 입학하셨다.
그때는 학생운동이 한창일때 였으며,
아버지도 과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이였다.
여담으로 당시 김민석(현 여당대표)도 만난적 있었는데
그때부터 구설수가 많았던 사람이라
아버지가 한번 만났을때 "왜그랬어요 형..." 이라고 한적있다.(이건 다음에)
아무튼 아버지는 당시 강렬했던 학생운동에 몰입해서
그때당시 운동권이 했었던 과격한 폭력시위에 동참하시기도 했다.
순경한테 돌을 던지거나 화염병을 만들어서 던지는 등
지금으로서는 용납되지않는 미친짓을 많이했지만 그당시에는 너도나도
동참했기에 아버지도 같이 즐기며 학업마저
스스로 정의감에 몰입했다고 했다.
나름 메디컬에서 저공비행단(유급당하지 않을정도로 학점유지한채 졸업)으로
지내면서 어떻게 대학을 졸업한 후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며 의정부에
개업을 하셨다.
아버지 세대는 동창회가 있으면 대부분 나와서 참석하는경우가 많았고
고등학교 동창회같은 경우 흔히 말하는 사짜직업들끼리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가 원래 그런거고 이제는 그런문화가 당연하게 그러려니 한다.
어쨋든 아버지 친구분중에 중앙지검에서 근무하는검사가 계셨는데,
그분이랑 어렸을때도 사이가좋아서 퇴근후에 만나거나 주말에도 같이
놀러다니셨다고 한다.
그 분은 나름 실력이좋으셔서 최근에는 지방검찰청청장까지 역임하신분이다.
아버지는 그분과 지내면서 다른 검사들과 친해졌고 가끔 정치권의 인물들까지
식사하고 겸상하면서 그저그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의정부에서 병원을 하실당시 건물주랑 트러블이 생겨
지금 내가사는 충청권지역의 시골로 병원을 이주하시게되었다.
우연히도 새로 개업한위치 바로앞에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당시 한나라당)
사무실이 있었고 당시 그 의원님과 친해져 나도 뵐때마다 인사를 드리고는 했다.
아버지는 당시 가정에 안좋은일이 있었는데 의원님이 그런아버지를 보고
같이 얘기도 나눠주고 책도 읽으면 마음이 괜찮다고 사다주시고 식사도 여러번 같이하고 나를 볼때마다 기특하다고 지갑에서 용돈을 꺼내주시기도 하셨다.
의원님은 아버지를 친한동생 혹은 조카처럼 아껴주셨고 내 앞에서
늘 아버지를 지켜주는 든든한 어른이되라고 하셨으며
훌룡한 아버지라고 극찬하시고 다니셨다.
아버지의 대학교 동창 중 친했던 여성분의 남편이 대전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이셨는데 그분과도 구면이고 학생일당시 데모도
했던 스토리가 있어서 그런가 정치권분들이 아버지를 나름 잘대해주셨다.
우리는 흔히 여야 정치인들을 떠올리면 서로 매우 사이가 안좋고
눈도안마주치고 싸울것같지만 카메라앞에서 윽박을 지르며 싸워도
보는눈이 사라지면 "형님 살살해~이따 밥먹어야지~"하는 사이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체적으로 이런식이다.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과세되는 대상이 많아지자
의원들과 군수등 합세해서 지역세무서장한테 연락해서 신용카드 경비처리를
가라쳐서 절세를 하게 도와주거나 근처에 새로운 병원이 개업하려면
위치조정을 해주거나, 부동산을 투자할때 어디가 오를지 미리 알려주는등
대중들이 보면 분노할 부정부패였으나 그들의 세계에서는 어찌보면 일상처럼
당연한 행동덕분에 나는 학창시절을 형편이 나름 어렵지않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보니 "누군가의 좋은형도 누군가에게는 쓰레기같은놈"의 인간관계 현상을
너무 어렸을때부터 이해했던것같다.
물론 아무 대가 없이 그래준것도 아니다. 선거 시즌이 되면
여야막론하고 아버지의 병원의 넓은 창문을 이용해 현수막을 걸어줄때
무보수로 해주거나, 선거자금을 조금씩 주거나 무료로 진료해주는 등
정치인도 아무 대가 없는 사람에게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정치같은거 관심가지는게 싫었다.
나라가 어려워지든 내가먹고사는게 지장도없고 나랑은 관련도없고,
부모님은 내가할일이나 열심히 하는게 좋다고 알려주셨으며
어느진영이든 그들은 그저 돈많이벌어서 잘먹고 잘살려 일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국가가 부패하든 우리나라는 민주사회이고 국가가 혼란스러우면
알아서 밸런스가 유지될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건 도를 넘었다.
지금의 민주당은 80년대 학생들을 대변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며,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하다하다 선거까지 건드리는 미친놈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야당까지 이런 국민의 입에서 거론조차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리니
나라가 썩어도 너무 썩었다.
이제보니 지금까지 있었던 선거조작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등
여러가지 상황과 정황을 그리고 증거들을 목격했고
나라가 특정 세력에의해 전복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퓨파퍄 retweeted
치과 개원하고 힘들었던 점의 하나는 '무례'였다. 직원으로 두는 위생사나 간호조무사 특성상 고졸 or 전문대 졸업이나..이게 뭐랄까 지식의 차이나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무례한게 너무 이해가 안가고 힘들었다.. 예를 들어 대표 원장인 내가 말을 하고 있을때 갑자기 껴들어서 본인 말을 하던지.. 내가 말을 하고 있으면 알아서 직원은 하던 말을 끊던지 해야 하는게 그냥 내가 생각하는 상식인데 그냥 나랑 오디오가 겹치가 본이나 하던말을 계속 한다던지.. 하는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식적인 예의라고 할까.. 그런거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과 일하기가 힘들고 그걸 일일히 다 말하는게 너무 짜친다고 해야할까.. 아니 살면서 당연히 알게 되는 예절을 왜 내가 성인한테 하나하나 말해야 하는거지.. 라는 피곤함.. 그래서 개원 생활을 탈출하고 싶었다... 페닥하면 위생사가 무례하던 아무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도쿄랑 서울의 차이는 개인적으로 돈 쓴 만큼보다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생각함... 나도 어릴 땐 몰랐는데 공부 좀 더 하고 도쿄를 바라보니 도시 설계, 건축, 예술 인프라, 패션 등등에서 아예 체급이 다른 도시라고 느낌
나는 일본이 정말 ‘돈 쓴 만큼 경험이 달라지는 나라’라고 생각함.
내가 얼마를 지불하느냐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의 수준과 폭이 크게 달라지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일본은 그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임.
가성비 따져서 여행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세심한 대접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함.
오히려 우리나라가 이런 서비스 문화와 소비의 다양성 측면에서 일본을 따라가는 느낌을 꽤 많이 받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임.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 분야도 많겠지만, 저렴하게 여행하며 경험한 것만으로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건 좀 성급하지 않나 싶음.
퓨파퍄 retweeted
그럼 동남아, 이슬람, 중국인들이 한국에 일단 여행비자로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평생 거주하며 우리와 부모세대가 뼈빠지게 일하면서 투쟁하면서 만든 최고수준의 한국의 사회보험 다빨아먹고 20년뒤엔 나라 망하라는 거잖아요?
왜들 이러시는 건데요
퓨파퍄 retweeted
한국인 없는 한국이 무슨 의미가 있음?
당장은 필요해 보이고, 겉으로는 정의로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음
하지만 그 결과물이 한국인을 소수로 만들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겪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냥 매국일 뿐임
원래 사기꾼들이 선한 척, 욕심없는 척 하면서 돈 빨아먹음
퓨파퍄 retweeted
Replying to @Don_Sung_EE
한국의 40대 중반부터 그 이상 세대가 아주 희한함
자기 객관화가 결여된 세대같음. 거울로 자기 모습 한번만 봐도 깨달아야 되지 않나? 결혼은 절대 하면 안된다는 거.
퓨파퍄 retweeted
정주영 회장님과 현대그룹도 북한에게 돈 털리고,
정몽헌 회장님 계열 현대그룹은 소멸됨 -.-;
공산주의자(운동권)의 약속을 믿으면 망함 -.-;;
이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선택해도 된다는 레닌 사상을 뼈속에 새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
Mısırlı milyarder Naguib Sawiris, 2008’de herkesin uzak durduğu Kuzey Kore’ye yatırım yaptı. Kuzey Kore’de o zamana kadar doğru düzgün cep telefonu şebekesi yoktu. Mısırlı milyarder ülkenin ilk cep telefonu şebekesini kurdu. Aslında hesabı basit ve mantıklıydı, ülkede rakip yok, pazar bomboş. Düşündüğü gibi de oldu. Gerçekten işler çok iyi gitti, Mısırlı milyarder Kuzey Kore’de para basıyordu.
Kuzey Kore’nin başkentinde insanlar ellerinde telefonla dolaşmaya başladı ve milyonlarca hat satıldı. Şirket kağıt üzerinde ciddi ciddi para basıyordu.
Ama bir sorun vardı. Müşteriler faturalarını Kuzey Kore wonuyla ödediği için bu parayı ülkeden çıkarmanın bir yolu yoktu. Kağıt üzerinde devlet resmi kuru kullanıyordu, sokakta ise karaborsa kuru geçiyordu. İkisinin arasında ise uçurum kadar fark vardı. Resmi kurla hesaplayınca Mısırlı milyarderin Kuzey Kore’de yaklaşık 450 milyon dolar karı görünüyordu. Gerçek kurla bakınca bu para 8 milyon dolar ediyordu. Yani adam yıllarca çalışmış, kar etmiş, ama kazandığı para ülkenin içinde sıkışıp kalmıştı.
Mısırlı milyarder o dönem bir röportajında şöyle anlattı: Bütün darbeleri ben yiyorum; kolay bozdurulamayan bir parayla ödeme alıyorum, çok para koydum, bu ülkeye otel bile yaptım…
Otel lafı da boşuna değil. Pyongyang’ın simgesi olan 105 katlı Ryugyong Oteli’ni Mısırlı milyarder yaptırdı.
Fakat otel yıllarca bitmeden öylece durdu. Bu otelin sadece dışındaki cam kaplamalara bile o dönem 215 milyon dolar para harcanmış. Sonrasında Kuzey Kore bildiğimiz gibi yine kazık attı.
Mısırlı milyarderin kurduğu şebekenin yanına kendi rakip operatörünü kurdu.
Yani Mısırlı şirket altyapıyı kurdu, insanlara telefon kullanmayı öğretti, pazarı hazırladı, sonra devlet kendi şirketini açıp pastayı ondan aldı. Mısırlı milyarder aynı yıl şirketin kontrolünü kaybettiğini kabul etti ve şirketi kendi hesaplarından çıkardı. 2020’de çıkan haberlere göre milyarder, Kuzey Kore’de kalan yaklaşık 600 milyon dolarlık kârından vazgeçti ve ülkeden çekildi. İçeride de oteli ve şirketi kaldı.
Bu kadar riske neden girdiği sorulduğunda ise şöyle cevap verdi:
Güney Kore ve Kuzey Kore’nin bir gün tek ülke olacağını düşündüm, o zaman varlığımız çok değerli olacaktı.
Yani Mısırlı milyarder aslında bugüne değil, yarına yatırım yapmıştı. Hesabı şuydu: Bir gün Kuzey ile Güney birleşirse, 25 milyon kişilik bir ülkenin tek telefon şebekesi elinde olacaktı. O gün geldiğinde 600 milyon dolar kimsenin aklına bile gelmeyecekti. Elindeki şirketin değeri 20-30 milyar dolar edecekti. Ama o gün hiç gelmedi. Şu an bile şebeke yerinde duruyor, insanlar hala o telefonlarla konuşuyor, camla kaplanan otel de Pyongyang’ın ortasında. Sadece hiçbiri artık Sawiris’in yani Mısırlı adamın değil.
Aslında Kuzey Kore’de para kazanmak zor değil, asıl zor olan o parayı oradan çıkarabilmek. Açıkçası bunu Çinliler bile zor yapıyor…
Readers added context they thought people might want to know
Kuzey Kore'nin ilk cep telefonu şebekesi Sunnet, Kasım 2002'de Tayland şirketi Loxley Pacific tarafından Pyongyang ve Rason'da açıldı. 2003'te ülkede 20.000'den fazla cep telefonu kullanılıyordu.
38north.org/2022/11/twenty…
asiatimes.com/2019/07/north-…
퓨파퍄 retweeted
한국 시인들은 시가 단순히 듣기 좋은 짧은 문구, 의미심장한 글귀 몇줄만 끄적이면 되는 줄 안다
시가 어떤 장르인지도 모르고 시랍시고 쓰는 머저리들만 있는 게 한국 문학의 현실이다
농담이 아니고 순우리말 랩을 만들었던 랩크루 가리온이 백년 한국어 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일 것이다
퓨파퍄 retweeted
이주노동 웰컴이라는 여러분이 2030 엠생남성들의 밥그릇 선택지를 이주노동 유입으로 뺏어버렸고, 그 대체효과가 구축효과를 낼 만큼의 질량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아예 진입이 안되고있다고요. 그게 절망사로 수치적으로 드러날정도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