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튀속 retweeted
남주 업보빔 제대로맞아서 관계역전된거 개웃ㅜㅜ
용기내서 고백할라했는데 여주가 우리 친구해요! fwb 이래서 남자 개당황.. 혹시머리도찍어보셧나요? 못들은걸로하겟습니다 뭔지는알고하는소립니까? 막이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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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달 너무웃긴게 맨날 성인끼리 즐기면 그만이지~
쿨한척하더니 여주랑 뜨밤보내고 일어나자마자 설레하면서 먹을거사옴 (이미 말과행동 ㅈㄴ다르죠) 여주가 즐거웠어요! 메모만 남기고 가버린거보고 아침밥 버려버림 (승질머리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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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마세요? 눈에 힘 좀 빼라는 게 까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 아니 제가 씨피 파벌 싸움을 하는 게 아님미다 ... 전 남궁미도도 설렌다는 느낌을 못 받앗어요 ... 전 넷 다 흩어지길 바란답니다 .... spin-spin.com/q/6ae2ea4e2c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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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 제가 씨피 파벌 싸움을 하는 게 아님미다 ... 전 남궁미도도 설렌다는 느낌을 못 받앗어요 ... 전 넷 다 흩어지길 바란답니다 .... spin-spin.com/q/6ae2ea4e2c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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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문제
1) 가족 서사가 결핍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곁가지처럼 추가되면서 이야기를 산만하게 만들었다는 점, 2) 모성과 부성에 관한 작가의 인식이 다소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시대착오적인 대사들)이 이 작품의 한계라고 생각함. 3)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스토리로 인해 이야기의 뼈대(결핍의 구조)가 흔들린 것도 문제임. 앞서 언급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죄책감이 작품에 쿵하고 얹히면서 촘촘하게 쌓아온 서사가 다 묻힌 느낌이랄까. 두 가족을 엮을 방법은 많았을 텐데, 지나치게 비극적인 서사가 개입한 뒤로 두 사람의 감정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짐.
4)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란 무엇인가‘임. 서로의 부모가 됨으로써 스스로 구원받으려는 감정을 연인 간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가. 장기 연애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 위한 소재라고 볼 수 있음. 흔히들 겪는 장기 연애의 딜레마가 바로 그 지점(가족 같은 편안이 사랑인가)에 있기 때문. 그래서 사실 수아, 태승에게도 가족과 관련된 상처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게 맞았는지 의문이 듦(가족과 관련된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매력적인 연애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님. 일단 이건 드라마고, 한정된 시간 내에 두 인물의 과거 서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으니까…강조할 의도가 없었다고 볼 수 없음).
가족에 관한 결핍에 징그럽게 달라붙는 연민, 피해의식까지가 사랑인가, 아니면 내 결핍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해 줄 만큼의 강한 끌림이 사랑인가.
이걸 묻고자 했다면 인물 간의 대비를 좀 더 명확하게 해야 했을 듯. ex) 태승-미도의 경우…태승이 연민을 요구하면서 미도는 자기 행동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림. 태승과 남궁의 차별성이 불명확해지면서 미도의 일탈적 행위(키스)는 서사적 정당성을 잃었기 때문. 기존 관계에 머무는 것도, 연민으로부터 도망쳐서 또 다른 연민으로 가는 것도 문제…
사실 이 드라마는 잘 만들었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임.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결한 주인공 혹은 아예 도덕 관념도, 행동에 브레이크도 없는 빌런에 익숙하기 때문임. 하지만 그냥 욕하게 되는 드라마와 욕은 하지만 공감이 가는 드라마는 완전히 다름. 이런 드라마에는 밉지만 내심 이해는 가는 캐릭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함.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동시에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해도 이상한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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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동안 너다연을 조금 봄. 드문드문 보고 든 생각을 정리한 거라 제대로 된 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작가는 어긋난 결핍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음. 남궁의 결핍은 엄마고(미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친모에게 더 실망하게 된 것 같음), 미도의 결핍은 아빠임. 남궁에게 결핍은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미도는 결핍을 자기 탓으로 돌림. 여기서 불행을 대하는 두 인물의 태도가 결정됨. 남궁은 모두에게 있는 게 자기한테만 없다는 피해의식을, 미도는 모든 불행은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을 방어기제로 삼고 있음.
문제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결핍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점임(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함께 해 온 게 크게 작용하는 듯). 아빠가 없는 미도는 남궁에게 아빠가 되어주려고 했고, 없느니만 못한 엄마가 있는 남궁은 미도에게 엄마가 되어주려고 한 것 같음. 미도는 남궁을 위기에서 구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그녀의 꿈을 향한 열정의 근저에는 남궁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잡고 있었음. 한편 남궁은 미도를 위해 헌신하고, 꿈을 이루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낌. 이는 사회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부여해 온 역할에 대응됨. 그러니까 이 둘은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대신,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을 주는 방식으로 사랑해 온 것임. 사랑하면 할수록 자기 결핍을 실감하게 되는 게 이 커플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임.
나는 작가가 이렇게 모성과 부성이 짝을 이루는 결핍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가족 이야기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함.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로맨스를 생각했는데 가족 드라마가 왔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