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영화의 이단아"이자 성폭력 가해자인 소노 시온의 한국 초청 행사에 관하여 씁니다. + 춘희 측의 응답 또한 이미지로 첨부합니다. 베뉴의 책임 의식과 소통 의지를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행사는 "소노 시온 감독, 혹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대해 첨언하실 분, 두둔하실 분, 반박하실 분, 그 모든 분들을 환영"한다고 덧붙였으나,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사실은 "논란"이라고 모호하게 표현될 수 없습니다.
마쓰자키(@Yuki_Mats ) 씨가 공개한 令和4年(ワ)第19226号 민사 사건의 판결문에서 소노 시온 감독이 1. 여성 배우들에게 성행위 및 접대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2. 해당 민사 소송 과정에서 피해 제보자는 13명이며(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3. 최초 피해 폭로자 중 한 명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이후 업계 관계자들의 폭로도 이어졌습니다.
성폭력 가해 예술인은 법적 판결을 받거나 때로는 받지 않은 채로도 사회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계나 문화 공동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다시 받아들일 것이냐, 혹은 가해자의 작품을 어떻게 다시 해석할 것이냐, 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반드시 가해 사실이 함께 다뤄져야 하며, 그것이 작품 외적인 것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로 다뤄져야 하고, 이는 실존하는 피해 당사자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안전과 회복을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전제 하에, 현실의 폭력과 영화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서로를 매개하고 매개되어 이루어졌는지 분석해내고, 스스로의 매료됨을 다시 위치 짓는 비평은 가능하고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소노 시온을 "컬트영화의 이단아"라고만 소개하며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춘희가 표방한 운영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BDSM 퍼포먼스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성폭력 가해자가 직접 예술가로 초청되어 온다는 것은, BDSM의 근간인 합의와 안전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기획입니다. 소노 시온은 지금까지도 민사 판결문의 세부를 강조하며 자신이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폭력과 2차가해는 "첨언, 두둔,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 책임, 회복의 문제입니다. 소노 시온이 예술가로 강조되는 행사 현장에서 누군가 이 문제를 안전하게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법적 과정에서 피해를 제보한 사람만 13명이며, 10년도 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바로 옆 나라의 일이고, 아직까지 가해의 책임과 피해의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문화 공간이 그를 "예술가"로서 초청하는 기획의 베뉴를 맡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춘희는 제 동료들도 종종 참여하는 곳이며, "지속 가능한 쾌락"이라는 표어 아래, "모든 신체를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규칙을 내세우는, 한국에 드물고 귀한 베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이 안전하고 모두에게 즐거운 곳으로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저를 포함 누구도 이런 공간에 들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행사 기획자 Nikodem Karolak, 참여 디제이, 평론가 김봉석(@lotusid) 씨에게도 전달합니다.
소노 시온의 한국 행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셔서 감사하다. 불과 몇 년 전의 사건임에도, 성폭력 가해 예술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가해에 대한 책임과 피해자의 회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다시 예술가로서 초청하고 소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확인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인스타그램 게시물 링크 첨부합니다.
instagram.com/p/DfZpAzSz5yD/…
bluefoxgirl retweeted
<가능한 사랑>, <버닝>, <시>, <박하사탕>은 다 좋았고 다시 볼 <밀양>도 과거 기억 반추해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오아시스>만큼은 다른 작품들만큼 작품의 편에 서서 동의를 할 수가 없는 듯.
오시미 슈조
악의 꽃 > 나는 마리 안에 > 어서 와, 앨리스 > 피의 흔적 순으로 좋아함 (해피니스는 보다 말았고 데빌 엑스터시는 말을 아낄 것이고 표류 인터넷 카페는 아직 안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