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말라!
AI는 시니어에게 그 활용도가 더 높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나의 컨셉을 위해 통상 석달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젠 삼일에서 일주일이면 결과를 만든다.
핵심은 석달 내에 끝낼 수 있던 사람이 그럴 수 있단 거다.
시니어든 주니어든.
웃긴 이야기들.
은퇴 앞둔 전문가들은 왜 은퇴자들을 위한 뭔가를 하는 것으로 자기의 두번째 인생에 목표로 세우려 할까?
그건 은퇴 이후의 삶에 무지하거나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탓이다.
잘 늙기나 하자.
이재명이 옳다는 객관적 사실.
극우가, 검찰이, 언론이, 친일이 모두 싫다고 하는 걸론 부족했다. 결국 민주당 내부에서 ‘나는 이재명이 싫어요’라고 행동하는 순간 우리 역사에 그는 몇 안돼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었다.
雜學多識(잡학다식)
아이가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읽게 되길
고전과 철학은 무협과 판타지와 만나고, 정론(正論)은 사론(邪論)과 만나고,
선생인 동시에 제자를 두게 된다면 그는 서너개의 삶을 한번의 생으로 경험하게 되리라.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리라
그렇게 되지 않다면 글이 왜 존재하겠나
몇.
삶 전체는 죽어 만날 몇을 만드는 과정이다.
사는 동안 무수히 스쳐간 만남 속에 남은 몇.
그 몇은 먼저 가기도 남겨지기도 하지만 몇 안됀다.
우리네 삶이.
몇.
남기려고 사는 건 아니다.
남겨지는 거지.
가족 빼고 몇.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놀랍다.
정확한 정보가 공급된다면 눈이 부실 만큼 빛날 것이다.
그러한 정보를 갖고 빛나지 않을 국가도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거대한 힘과 권력 앞에서도 반짝였다.
그리고 반짝임은 꺼짐의 순간을 인내해야 만들어진다.
로캉탕이 구토를 느낀 존재물의 맛은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 즉, 해변의 돌과 같은 것들.
새벽 하늘 숨가쁘게 1505동 아파트 꼬다리를 넘어가는 달을 보며 느낀 멀미가 빛보다 조금 느린 그러나 자전과 공전의 공전이 더해진 속도 때문이라면 얼마나 허영한가
삶은 자기존재를 증명하는 여정이다.
각자는 수단이 다르다.
때때로 다름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고귀함은 그 대상이 된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있다.
끝까지 고독할 수 있다면 비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도달한다.
비판하라,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