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수면이 먼저 본다
다리 아래 물은 검었다.
낮인데도 그늘이 깊어서, 수면은 거의 검은 유리처럼 보였다. 가끔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일고, 그때마다 저 위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길게 깨져 흩어졌다. 반짝이는 조각들이 수면 위를 미끄러지며, 마치 무언가가 아래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고 끄기를 반복했지만, 신호는 처음부터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점점 흐려졌다. 단지 “저 물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다. 누구의 말이었는지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수면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그는 깨달았다.
빛이 반사되는 위치가 이상했다. 다리 아래 그늘인데, 햇빛이 닿을 리 없는 각도에서 반짝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물결이 잠잠해질 때마다, 그 반짝임은 한 점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줄어든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냥 검은 물뿐이었다.
그는 난간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콘크리트 벽에 붙은 흰 가림막들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림막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면의 반짝임이 가림막의 그림자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누구 있어?”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수면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반짝임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이번엔 그의 발치 바로 아래, 난간 바깥쪽 물 속에서였다.
그는 난간을 붙잡았다.
손이 닿은 철이 예상보다 차가웠다. 아니, 차가웠다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져진 것처럼, 온기가 빠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수면 바로 아래에서, 그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난간 위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정확히 따라가지 않았다. 약간 늦게 움직였다. 입을 벌릴 때마다, 수면 아래의 입이 먼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입이, 아주 작게 웃었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발밑이 미끄러졌다. 콘크리트 바닥이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젖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반짝임은 없었다. 검은 물만 고요했다.
그런데 그 검은 물 속에, 그의 손이 하나 더 있었다.
난간을 붙잡고 있지 않은 쪽 손이, 이미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천천히 난간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수면 아래의 입이, 먼저 열렸다.
#공포단편소설 #디스토피아
GX100으로 흑백사진직으면 그레인이 매력적이야 라는 말을 듣고 이런 흑백설정, 칼라 스냅샷용도 설정. 20년(2007년 발매)된 똑딱이 치곤 잘찍히죠 나는 왜이렇게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하는지 나도 모를일
야간 진료를 하는 동네의 낡은 의원. 텅 빈 대기실에는 나와 벽시계의 초침 소리뿐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밴 공기가 유난히 척척하고 차갑게 느껴질 즈음, 삐걱- 하고 옆자리의 인조 가죽 소파가 푹 가라앉았다.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곁눈질로 보이는 것은 낡은 환자복 자락과, 바닥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뜬 창백한 맨발. 온도계의 눈금이 곤두박질치는 듯한 지독한 한기가 목덜미를 덮쳐왔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그것이 천천히, 아주 뻣뻣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나의 목을 조를 것인가, 아니면 기괴하게 꺾인 얼굴로 나를 노려볼 것인가.
숨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으려던 찰나였다.
사각, 사스락.
건조하고 마찰음 섞인, 너무나도 익숙하고 일상적인 소리.
홀린 듯 실눈을 뜬 내 시선 끝에는, 길다란 대나무 귀이개를 귓구멍에 찔러 넣고 무심하게 귀를 파고 있는 유령의 옆얼굴이 있었다. 심지어 꽤나 시원한지, 창백하고 굳어있던 입매가 미세하게 풀려 있었다.
숨 막히는 공포는 어처구니없는 광경 앞에서 길을 잃었다. 유령은 귓속을 가볍게 몇 번 털어내더니, 품에서 새 대나무 귀이개를 하나 꺼내 내 쪽으로 슥 내밀었다.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아니, 묘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은 텅 빈 눈동자.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사각, 사각.
사스락, 사각.
적막한 병원 복도에 두 존재가 나란히 앉아 귀를 파는 소리가 스테레오로 울려 퍼졌다. 오른쪽 귀 안쪽을 섬세하게 긁어낼 때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오싹함이 유령의 냉기 때문인지, 아니면 짜릿한 쾌감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괴할 정도로 아늑한 평화였다.
"대기 중이신 환자분, 1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 옆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푹 꺼졌던 소파의 가죽만이 원래의 형태를 찾으며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 손에 쥐어진 서늘한 대나무 귀이개와, 귓속에 남은 묘하게 개운한 감각만이 방금 전의 기막힌 동석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공포단편소설 #디스토피아
방 안에는 공기가 흐르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도 무색할 만큼 묵직하게 가라앉은 먼지와, 마른 석고 가루 냄새뿐이었다.
식탁의 끝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찻잔에 담긴 차에 굳어가는 기름막이 떠 있었고, 식어버린 찻잔을 쥔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푸르스름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고개 역시 힘없이 옆으로 기울어진 채, 촛불의 그을음처럼 탁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육신 바로 뒤, 창가 곁에서 그 광경을 두개의 그림자가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그녀의 그림자가 엷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대를 울려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서리 낀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건조한 파동이었다.
"어제는 아니었어."
그의 그림자가 벽에 기댄 채 나직하게 대꾸했다.
"한 달 전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저 차를 따르기도 전이었겠지. 온기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
둘은 알고 있었다. 상대의 숨이 멎는 순간도, 뺨을 스치던 온기가 얼음장처럼 굳어가던 밤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너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순간, 스스로가 썩어가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인정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은 마주 앉은 서로의 시신을 모른 척하며, 끝없이 차를 따르고 마주 웃는 시늉을 이어왔다. 침묵으로 얽힌 잔혹하면서도 기묘한 유예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연극마저도 완전히 비워졌다.
의자에 얹힌 두 구의 차가운 몸뚱이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감추지 못했다. 푸른 시반과 굳어버린 침묵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저걸 어쩌지?"
그녀가 턱으로 식탁의 시신들을 가리킨다.
"그냥 두는 거지. 이 세계에 남겨둘 수 있는 건 저것뿐이니까."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입술이 일그러짐이, 허공의 먼지 입자들이 파문처럼 일렁이게 하는 듯 하다.
그들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혹은 이 텅 빈 폐허에 남길 수 있는 유산은 거창한 유언이나 재물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썩어가던 것을 서로 모른 척 덮어두던 시간의 대가, 그리고 마침내 벗어던진 두 구의 싸늘한 시체뿐이었다.
"가자."
그녀가 먼저 돌아섰다. 발소리도, 옷자락 스치는 기척도 없었다.
그는 잠시 식탁 위에 굳어 있는 자신의 옛 얼굴과, 그녀의 꺾인 목덜미를 한 번 더 응시했다. '이미 죽은 자들이었지.' 혼잣말이 서늘한 바람처럼 맴돌다 흩어졌다.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두 그림자는 벽을 투과해 새벽의 서리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방 안에는 오직 서로를 영원히 응시하도록 남겨진, 두 구의 차가운 육신만이 유산처럼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공포단편소설 #디스토피아
What we did bequeath
Leaving two cold bodies we
Knew were long since dead.
#haikuhorrorprompt
My cyborg keeps forgetting, or maybe the system forgets us first. cutting the link and ordering us to discard ourselves here.
It forgets things, important things.
And my fluid system is failing. That's when I saw it.
Another unit, with my exact face. We were agents, we were once the system itself. discarded forgotten, circling each other for nothing
#horrorprompt #vsshorr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