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속 시간. 투자는 주식/BTC, 관심은 부동산

Joined October 2026
주택, 빌딩, 명소. 그 자리에 원래 뭐가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서 지금 모습이 됐는지가 궁금해 찾아 씁니다. 팔로우 해주시면 유용하지는 않지만 알면 좋은 이야기들 많이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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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3년도 안 돼 불이 꺼진 부산의 패션몰 부산 부전동 네오스포 상가는 2000년 3월, 부산 최대의 의류 도소매상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문을 열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작은 점포들이 들어섰고, 1,200여 개 점포가 개인들에게 분양됐다. 하지만 문을 연 해부터 상권이 침체되고 영업을 접는 상인이 늘었다. 관리비가 밀렸고 전기료도 내지 못했다. 2002년 11월 22일 한전이 상가의 전기를 끊었다. 개장한 지 2년 8개월 만이었다. 장사를 못 해도 분양받은 점포의 소유권과 재산세는 남았다. 일부 소유주는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2023년 10월에는 상가 점포 583개에 관한 경매 후속 절차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261개는 대금 납부와 소유권 이전을 마쳤지만, 나머지 322개는 대금을 내지 않아 재매각이 예고됐다. 2026년 10월에도 4층 194호 한 점포가 온비드 공매에 나왔다. 점포와 대지권을 파는 압류재산 공매다. 올해 7월 감정평가를 반영한 안내에는 4층 전체가 영업 중단·폐쇄 상태여서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돼 있다. 이번 입찰은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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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려 영도를 떠난 부산남고 부산남고 동창회는 모교를 영도에 남겨 달라는 대신, 명지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학생이 줄어 다른 학교와 통폐합되기 전에 학교의 명맥을 잇자는 생각이었다. 주민들은 학교마저 떠나면 교육 여건이 더 나빠지고 인구 유출이 빨라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 1955년 문을 연 부산남고는 1974년부터 영도 동삼동의 바닷가 교사를 썼다. 자율형 공립고로 운영하고 기숙사도 지었지만 학생 감소는 이어졌다. 반대로 명지국제신도시는 고등학교 과밀학급이 문제였다. 교육청은 기존 학교를 명지로 옮기는 신설대체이전을 추진했고, 2022년 이전안이 교육부 심사를 통과했다. 이전 과정에서는 같은 학교가 둘로 나뉘어 수업했다. 2025년 3학년들은 영도에 남고, 신입생들은 명지의 임시교사로 들어갔다. 개교 70주년 행사 날에는 1학년들이 단체 버스를 타고 영도로 와 선배들을 만났다. 선배들은 학교와 운동장을 안내하고 돌아가는 길에 먹을 간식을 건넸다. 2026년 2월 1일 부산남고는 명지의 신축 교사로 옮겼다. 학생들이 떠난 영도의 옛 교실과 복도, 운동장은 올해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이 됐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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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과 더불어. 서울과 경기 여기저기 집보러 다닐때, "이왕 간김에 그 동네 맛집도 가보기" 이삿날 중국집이 맛있는거마냥, 임장후 먹는 지역 식당들의 맛이 또..😂 또 <거기 부동산이 맛집을 잘 아신다>. 동네 터줏대감느낌 나는 중개인과 아파트 본 후, 맛집을 넌지시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시는.
Replying to @Keymong368774
부동산부터 맛집까지!! 클로져님 이 시리즈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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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경매에 나온 백화점 건물이 구청이 됐다 광주 화니백화점은 충장로 본점에 이어 백운광장 옆 주월동에 새 점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건축주가 부도를 내면서 공사가 멈췄다. 뒤이어 쇼핑몰 업체가 내부 공사에 들어갔지만 상가 분양이 부진해 2000년 이후 다시 중단됐다. 지하 6층, 지상 9층 건물은 여러 차례 경매를 거치며 주인이 바뀌었다. 2007년에는 외국계 투자회사가 250억 원에 낙찰받았지만, 건물은 오랫동안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그 무렵 남구도 청사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1995년 서구에서 분리될 때 지은 조립식 임시청사를 계속 쓰고 있었고, 일부 부서는 컨테이너에서 일했다. 새 청사를 마련하고 싶어도 돈이 부족했다. 2010년 캠코가 빈 주월점 건물을 구청으로 고치자고 제안했다. 남구는 소유자와 가격을 협상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한 뒤, 2011년 건물과 부지를 105억 원에 사들였다. 남구가 경매에서 직접 낙찰받은 것은 아니었다. 리모델링 비용은 캠코가 먼저 조달했다. 건물 일부에 상가와 편의시설을 넣고 그 임대수익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2013년 4월 옛 백화점 건물에서 남구종합청사 개청식이 열렸다. 다만 임대수익으로 비용을 갚는 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5년 12월에는 공실과 개발원리금 상환 문제가 행정사무감사에서 다뤄졌고, 회계과는 구 예산을 확보해 상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은 지금도 남구청사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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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대신 6층에 다리를 놓은 아파트 회현시민아파트는 10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대신 언덕에서 건물의 6층과 7층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놓았다. 낮은 쪽 1층 출입구와 높은 쪽 구름다리를 나눠 쓰면, 고층에 살아도 매번 1층에서부터 계단을 오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1970년 남산 아래 판자촌을 철거한 자리에 들어선 회현제2시민아파트다. ㄷ자로 꺾인 한 동에 352가구를 넣고 가운데에는 정원을 두었다. 준공 직전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가 일어나자 공사 중이던 건물의 골조 등을 보강해 완공했다. 세대별 수세식 화장실과 중앙난방을 갖췄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과 설비가 낡았다. 2004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고 2006년부터 주민 동의를 받아 건물을 매입한 뒤 철거하는 정리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다 건물을 고쳐 예술인들이 살고 작업하는 곳으로 남기려 했다. 기존 주민과 신진예술인이 함께 사는 임대주택에 공동 창작공간을 더하는 구상이었다. 설계까지 진행했지만 주민 이견과 사업성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계획은 다시 철거 쪽으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아래쪽에 주차장을, 위쪽에 남산과 연결되는 전망공원을 놓는 구상이다. 남은 세대의 보상 협의와 후속 시설 조성 절차가 이어지고 있고, 전체 사업기간은 2031년 말까지로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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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가꾼 숲은 왜 경매에 나왔나 대전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한 사람이 사재를 들여 가꾼 숲에서 시작됐다. 건설업을 하던 임창봉은 1970년대에 야산을 사들여 나무를 심었다. 처음 심은 나무들은 바위가 많은 산에서 잘 자라지 못했지만, 메타세쿼이아는 빠르게 자라 숲의 중심이 됐다. 아들들도 숲을 가꾸는 일에 합류했다. 1991년 민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된 뒤 이듬해 문을 열었고, 통나무집과 합숙시설, 수영장까지 갖췄다. 하지만 시설에 들어간 빚의 상환 부담이 쌓이고 외환위기 뒤 방문객도 줄었다. 2000년에는 채권자인 농협이 법원에서 경매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지역에서는 다른 용도로 개발돼 시민의 휴식 공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전시는 숲을 보존하고 시민 쉼터로 남기려고 직접 경매에 참여했다. 2002년 2월 3차 경매에서 시가 낙찰받으면서 개인이 운영하던 휴양림의 주인이 바뀌었다. 시는 낡은 시설을 정비하고 숙박·교육시설을 마련해 2006년 다시 문을 열었다. 입장료를 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밭수목원처럼 무료로 열기로 했다.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고 숙박시설은 유료로 운영했다. 이후에는 나무 사이로 높은 길과 스카이타워를 놓아 숲을 둘러보는 방식도 넓혔다. 지금 장태산은 숲길과 출렁다리, 숙박시설을 갖춘 자연휴양림으로 쓰이고 있다. 입구에는 이 숲을 일군 임창봉의 흉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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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걷어야 기차가 지나가던 군산의 골목 군산 경암동에서는 기차가 올 때마다 빨래를 걷었다. 역무원들이 열차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면 주민들은 선로 곁에 널어 둔 옷가지와 내놓은 물건을 서둘러 치웠다. 철길은 1944년 제지공장과 옛 군산역을 잇기 위해 놓였다. 지금의 페이퍼코리아 공장으로 원료를 들이고 생산품을 내보내던 약 2.5km의 산업용 철도였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낮은 집들이 철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봤지만 화물열차는 계속 다녔다. 주민들이 빨래를 널고 고추를 말리던 공간이 기차가 지날 때면 비워야 하는 길로 바뀌었다. 이 생활은 2008년 열차 운행이 멈추면서 끝났다. 남겨진 철길과 집들에는 사진가와 여행객이 찾아왔다. 2011년 군산시가 탐방길과 작은 공원으로 정비하려 하자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는 옛 골목의 정취가 사라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관광객을 맞는 방법을 놓고도 생각이 갈렸던 것이다. 이후 철길 옆 옛 주택 일부에는 문구점과 잡화점, 간식 가게가 들어섰다. 지금은 옛날 교복을 빌려 입고 철길을 걷거나 달고나를 만드는 체험을 하는 곳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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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의 밤을 바꾼 나비작전 종로3가에는 손님의 이름과 직업을 캐묻는 단속으로 해체된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 종로3가를 줄여 ‘종삼’이라 불린 이곳은 6·25전쟁 뒤 종묘 앞과 단성사 뒷골목을 중심으로 성매매업소가 크게 늘었다. 정부와 서울시가 단속해도 손님은 계속 찾아왔다. 1968년 9월 시작한 나비작전은 그 손님을 겨냥했다. 골목마다 밝은 전구를 달고 공무원과 사복 경찰관을 세웠다.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과 직업, 주소를 물었다. 얼굴을 숨기고 드나들기 어려워지자 발길이 끊겼다. 10월 초 집결지는 해체됐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여성 72명은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강제 수용됐다. 종삼에서 밀려난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미아리와 천호동 등으로 이동했다. 종삼을 없앴다고 서울의 성매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 돈의동 일대의 업소가 떠난 빈자리는 값싼 쪽방을 찾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지금도 돈의동에는 쪽방촌이 남아 있고, 상담소와 온기창고 등이 주민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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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매각 무산 뒤 다시 돌아간 제철소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는 옛 한보철강 공장이 포함돼 있다. 바다를 메워 만든 터에 철근과 강판 공장을 짓던 한보철강은 빚을 크게 늘린 끝에 1997년 부도를 맞았다. 가동하던 열연공장은 이듬해 멈췄고, 새로 짓던 공장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회사정리절차에서 공장을 팔아 정상화하려 했지만 계약을 맺고도 두 번이나 인수가 무산됐다. 2000년 첫 매수자는 부두 전용사용권 등 전제조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계약을 깼다. 2003년 두 번째 매수자인 AK캐피탈은 인수대금을 끝까지 내지 못했다. 세 번째 입찰에서 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이 8,771억원에 공장 자산을 인수했다. 개별 부동산 경매가 아니라 회사정리절차의 공개매각이었다. INI스틸은 지금의 현대제철이다. 2004년 인수 당시 철근공장은 가동 중이었지만, 열연·냉연 설비는 손을 더 봐야 했다. 멈춘 설비를 고치고 미완성 공사를 마쳐야 했다. 해외 제철소로 떠났던 기술자가 다시 돌아왔고, 공장 측은 지역을 떠난 인력을 대신할 직원도 구해야 했다. 열연공장은 2005년 재가동됐고 냉연공장은 2006년 가동에 들어갔다. 이후 고로를 갖춘 일관제철소로 확장해 2010년 가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철광석으로 쇳물을 만드는 고로와 철스크랩을 녹이는 전기로를 함께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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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막고 만든 통영의 해저터널 통영 해저터널은 바다 양쪽을 막고 땅을 파서 만들었다. 콘크리트 터널을 완성한 뒤 방파제를 걷어내 바닷물이 다시 흐르게 한 것이다. 이곳은 통영 시가지와 남쪽 미륵도 사이의 좁은 목이었다. 썰물 때는 땅이 드러나 두 곳이 이어졌지만, 배가 다니기에는 불편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과 여수를 오가는 배의 항로를 줄이려고 이곳에 운하를 팠다. 운하 공사와 함께 육지와 섬을 잇는 교통로도 만들었다. 미륵도에는 일본 어민들의 이주어촌이 커지고 있었다. 커지는 여객선과 군함의 통행을 고려해 다리 대신 해저터널을 택했다. 배는 위로 지나가고 사람과 차량은 아래로 건너도록 한 것이다. 1932년 완성된 터널은 길이 483m, 폭 5m였다. 차량과 소나 말이 끄는 수레도 다니던 생활 교통로였다. 이후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들어섰다. 1998년 통영대교가 완공된 뒤 터널의 차량 통행은 금지됐다.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길은 지금도 통영과 미륵도 사이를 걸어서 건너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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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로 팔린 신라 마을에 호텔을 지으려는 이유 경주 신라밀레니엄파크는 신라 시대의 집과 공연을 체험하도록 만든 테마파크였다. 1986년 신라촌으로 구상한 사업이 오랜 준비 끝에 2007년 문을 열었다. 귀족의 집을 본뜬 마을과 공예 체험공방, 수상공연장을 갖췄고 한옥호텔 라궁은 별도로 운영했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의 세트장이 들어서면서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모기업 삼부토건의 경영이 악화됐고, 2016년 경주 지진 뒤에는 방문객도 줄었다. 파크는 2017년 휴업에 들어갔다. 토지와 건물은 법원 경매를 거쳤다. 여러 차례 유찰된 끝에 2020년 2월 경주 힐튼호텔을 운영하는 우양산업개발이 약 280억원에 낙찰받았다. 새 주인이 추진한 것은 테마파크 재개장보다 호텔과 리조트 건설이었다. 땅을 샀다고 호텔을 바로 지을 수는 없었다. 관광휴양·오락시설지구의 토지이용계획을 바꾸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후 숙박과 상가, 휴양시설을 함께 둘 수 있는 복합시설지구 제도가 생겼다. 개발계획에는 호텔 130실과 글램핑, 관광형 증류소 등이 담겼지만, 용도 변경으로 높아지는 토지가치 중 얼마를 지역사회에 돌려줄지가 쟁점이 됐다. 2026년 7월 사업자는 현금 10억원을 제시했고, 경주시는 감정평가에 따른 토지가치 상승분에 일정 비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사업자는 부담이 커지면 대규모 투자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라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숙박·상업·문화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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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차가 드나들던 소각장이 드라마 촬영장이 됐다 부천 중동신도시가 들어서던 무렵, 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려 삼정동에 소각장을 지었다. 1995년 5월 가동을 시작한 이 시설은 하루 200t 규모의 쓰레기를 태웠다. 주변 주민들은 환경 안전성을 걱정했다. 1997년 다이옥신 과다 배출이 확인되자 약 6개월간 가동을 멈추고 집진설비를 보강했다. 다시 가동한 뒤에도 갈등은 이어졌다. 2010년 대장동 자원순환센터로 소각 기능이 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문을 닫았다. 약 4년간 쓰이지 않던 시설은 2014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됐다. 소각장의 역사를 남기면서 문화공간으로 고치기로 했다. 기존 골격은 대체로 유지하고, 필요한 곳을 손보는 방식이었다. 쓰레기차가 들어오던 반입실은 전시·공연을 여는 다목적홀이 됐다. 쓰레기를 쌓아두던 39m 높이의 벙커도 남겼다. 홀과 벙커 사이에는 새로 다리를 놓아 관람객이 저장조 안을 볼 수 있게 했다. 소각로는 들어내고 그 자리를 하늘이 보이는 에어갤러리로 바꿨다. 중앙제어실의 장비는 보존했고, 근로자들의 휴게실과 숙직실은 수업과 모임을 하는 스튜디오로 고쳤다. 2018년 문을 연 부천아트벙커B39다. 2023년에는 관리동에 라운지와 공유주방 등을 더하고 미공개 공간도 넓혀 열었다. 지금은 전시·공연과 교육, 영상 촬영에 쓰인다. 올해 방영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도 벙커브릿지와 다목적홀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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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군화를 구두로 고쳐 팔던 서울역 옆 거리 염천교의 구둣방들은 헌 미군 군화를 신사화로 고쳐 팔았다. 서울역 북쪽 염천교사거리에서 중림동삼거리로 이어지는 구두거리다. 이곳에 구두 가게가 모인 건 1925년 경성역이 들어선 뒤였다. 역 주변 창고로 들어가던 가죽이 밀거래되면서 이를 재료로 쓰는 수선점과 공방들이 생겼다. 광복 뒤에는 미군의 헌 전투화를 수선하고 개조해 파는 일이 더해졌다. 1950년대부터는 1층에 구두를 진열하고 2층에 작업장을 둔 가게들이 밀집했다. 주변의 가죽 재료상과 공방, 판매점이 함께 움직였고, 이곳에서 만든 구두는 주로 도매로 나갔다. 손님에게 구두를 파는 상가가 동시에 생산지였다. 6·25전쟁 뒤 구두 수요가 늘면서 1970~80년대에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제화업체와 공방·재료상이 금호동과 성수동 등으로 옮겨가고, 이후 값싼 중국산 제품과 수제화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상권은 작아졌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뒤에는 장인의 기술에 건강한 구두라는 방향을 더해 보려는 사업도 이어졌다. 지금도 염천교에는 수제화를 만드는 작업장과 구두를 파는 매장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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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만든 스키장은 왜 법원의 공개매각에 나왔을까 태백의 오투리조트는 탄광이 줄어들던 도시가 관광업에서 새 일자리를 찾으려고 만든 곳이었다. 태백시가 세운 관광개발공사가 골프장과 스키장, 숙박시설을 조성했다. 2005년 시작한 공사는 설계 변경을 거치며 사업비가 불어났다. 2008년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지만, 최종 준공 단계의 사업비는 약 4,400억원까지 늘었다. 개장 뒤에는 적자가 이어졌고 회원권 분양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민간 매각을 추진해도 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뒤에는 스키장 겨울 영업도 중단됐다. 법원이 회사를 살릴 투자자를 찾았지만 매각은 순탄치 않았다. 첫 응찰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고, 다음 인수 후보는 계약금을 제때 내지 못했다. 그 뒤 부영주택이 단독 응찰했다. 더 좋은 조건을 낼 곳이 있는지 추가 입찰까지 받았지만 새 후보는 없었다. 2016년 부영주택이 인수계약을 맺었고, 최종 매각대금은 800억원이었다. 시설 한 동을 따로 파는 경매가 아니라, 회생절차 안에서 리조트 회사를 공개매각한 것이었다. 그해 7월 회생절차가 끝났어도 스키장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리프트와 운영장비를 정비하고 슬로프를 손본 뒤 2018년에 다시 손님을 받았다. 지금은 골프장과 콘도, 겨울철 스키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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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회관을 약속한 자리에 호텔이 들어선 사연 서울시청 앞 더 플라자 자리에는 화교 상인들이 다시 들어올 회관이 생길 예정이었다. 이 일대에는 중국음식점과 상점이 모인 화교 거리가 있었다. 서울시는 소공동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화교 소유지를 모아 18층 화교회관을 짓겠다고 제안했다. 화교 지주들이 합의한 뒤, 1971년 10월 가게가 철거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철거 뒤 사업이 멈췄다. 서울시는 지하시설의 기본설계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고, 지주들과의 협의도 끝나지 않았다. 인근의 큰 지주는 화교만 따로 모으지 말고 한국인과 화교가 함께 들어가는 건물을 요구했다. 상인들은 가게를 잃은 채 기다렸다. 1972년 중반이 지나도록 사업이 멈춰 있자 한국화약이 땅을 사겠다고 나섰다. 감정가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사들이고, 대금도 한꺼번에 현금으로 주는 조건이었다. 생계가 막막해진 상인들은 땅을 팔았다. 새 상가를 기다리며 가게를 비웠지만 그곳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한국화약은 일본 마루베니와 합작해 호텔을 지었다. 1976년 문을 연 서울프라자호텔이다. 지금의 더 플라자는 올해 9월 말 영업을 중단했고, 리모델링을 거쳐 2029년 다시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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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간단히 곁들여봤네영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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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은 한때 외국인 사교클럽이었다. 황제가 외국 사절을 만나던 건물을, 나중에는 외국인들이 빌려 사교 모임을 여는 데 썼다. 처음부터 황제의 집무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옥헌이라는 이름의 황실 도서관으로 출발했고, 1901년 불에 탄 뒤 2층 벽돌 건물로 다시 지었다. 1904년 경운궁에 또 큰불이 나자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집무실로 쓰기 시작했다. 1905년에는 이곳에서 일본의 강압 아래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고종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1907년에는 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건물은 경성구락부라는 외국인 사교클럽에 임대됐다. 궁궐 영역이 줄고 길이 나면서 중명전은 담장 밖에 놓였다. 건물이 이사한 게 아니라 궁궐의 경계가 달라진 셈이다. 1925년에는 중명전에도 큰불이 나 외벽만 남았다. 건물을 고친 뒤에는 다시 사교클럽으로 썼고, 이 용도는 해방 뒤인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소유자와 쓰임새가 바뀌다가 2006년 국가가 건물을 매입했다. 2007년 덕수궁의 일부로 사적에 편입됐고, 2009년 말 복원공사를 마쳤다. 2010년 8월 일반에 공개한 뒤 지금은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등 대한제국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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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이순신이 혼인 뒤 살던 고택이 있다. 장인에게서 물려받은 집에서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다. 1969년 현충사 경내가 넓어지면서 종손은 밖으로 이주하고 집은 일반에 공개됐다. 국가가 관리하는 유적이 됐어도 고택 터에는 개인 소유 토지가 남아 있었다. 2009년, 15대 종손 배우자 명의의 땅이 개인 채무 때문에 법원 경매에 나왔다. 고택 건물은 매각 대상에서 빠졌지만, 그 아래 땅은 경매에 부쳐진 것이다. 첫 경매가 유찰되자 덕수 이씨 문중은 고택 터를 사들이려고 돈을 모았다. 충무공파의 상위 종파인 풍암공파가 입찰에 나섰고, 문화재청도 매입하려 했다. 5월 두 번째 경매에는 문중과 문화재청, 건설사 세 곳이 참여했다. 최고가를 쓴 건설사는 법인등기부등본을 내지 않아 탈락했다. 그다음 금액을 쓴 풍암공파가 11억5천만원에 낙찰받았다. 낙찰 대상은 고택 터 3필지와 보호구역 내 임야 1필지, 약 9만3천㎡였다. 처음 경매에 나온 땅을 전부 산 것은 아니어서, 멀리 떨어진 밭 3필지는 다시 유찰됐다. 지금도 현충사 경내에는 고택과 이순신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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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호는 농사를 지을 물을 모으려고 만든 인공호수다. 1976년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 사업으로 완공됐고, 그 과정에서 산성리와 청흥리 같은 마을이 물에 잠겼다. 호수 주변에서 모이는 물만으로는 필요한 양을 채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산 너머 순창의 섬진강 수계에서도 물을 끌어오게 했다. 산을 뚫은 도수터널로 다른 물줄기를 보태는 방식이었다. 순창에도 그 물이 필요했다. 가뭄이 든 2010년, 지역 주민들은 농업용수 등을 확보하려고 도수터널 입구에 약 2m 높이의 차수벽을 세웠다. 순창에 물을 남겨두자 담양호로 들어오는 양이 줄었다. 2013년에는 벽을 없애고 주민이 조절하는 수문을 두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순창 주민들은 자기 지역 물 이용이 침해될 수 있다며 반대했고, 협의는 길어졌다. 2022~2023년 극심한 가뭄 뒤 협상이 다시 움직였다. 2023년 8월 맺은 협약은 홍수기인 6~9월에 순창의 여유 수량만 끌어오도록 했다. 주민 관리원과 CCTV로 취수 상황을 확인하고, 담양호 아래쪽 물로 가뭄이 잦은 순창 금과면에 물을 공급할 방안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 2024년 4월 차수벽을 허물고 그달 29일 통수식을 열었다. 막힌 물길을 다시 여는 데 14년이 걸렸다. 지금 담양호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호숫가를 걷는 관광지로 쓰인다. 올해 개봉한 영화 살목지의 촬영장소 중 하나도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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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계곡 양옆에는 한때 아파트 9개 동이 서 있었다. 1971년 인왕산 아래에 들어선 옥인시범아파트였다. 건물과 콘크리트가 바위와 물길 일부를 가리면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찾던 계곡의 풍경도 달라졌다. 옛 모습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남아 있었다. 그림 속 돌다리는 계곡에 남아 있던 기린교로 추정된다. 아파트가 낡아 안전 문제가 커지자 서울시는 철거 뒤 녹지를 만들기로 했다. 2008년 부지를 녹지로 결정하고 보상을 진행했다. 당초에는 인왕산 산자락의 녹지를 잇는 계획이었지만, 철거와 조사 과정에서 기린교와 계곡의 역사적 가치가 주목받았다. 2010년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정선의 그림 속 경관을 되살리는 사업으로 이어졌다. 콘크리트에 가렸던 암반을 드러내고 소나무 등 향토수종을 심었다. 계곡 초입에는 정선이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풍경을 바라볼 공간도 마련했다. 사업비 1,060억원 중 1,005억원은 토지와 건물 보상에 들어갔다. 녹지를 만들고 계곡을 복원하는 비용은 55억원이었다. 2012년 7월 시민에게 개방된 계곡은 지금 인왕산자락길과 연결돼 있다. 평소에는 수량이 적어, 비가 내린 뒤 바위 사이 물소리가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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