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클라망스는 정말 90분 내내 '말한다.'
대사를 들으면서 그걸 대사라고 느낄 때가 있고 말이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렇게 시종일관 그걸 말로 느낀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아주 조금은 졸았다. 클라망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났고 황급히 기차를 타고 수도권에 올라왔고 결혼식에 참석해 4시간동안 수다를 떨고 다시 2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혜화로 와 그 극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치만 내 머리가 조금 몽롱한 게 다행이었다. '전락'은 맑은 정신으로 감당하기엔 나를 은근히 쿡쿡 찔러대는 극이었다.
오늘 하필 나는 결혼식에서 내가 대단히 잘 보이고 싶어했던(그것도 오래도록, 꾸준히, 옛날부터..) 분을 만나 길게 대화할 기회가 있었고
그 결과 바보같은 말을 잔뜩 했다.
온갖 말을 다 쏟아놓다 보니 그 분의 직장동료에 대해 오래 묵혀둔 험담도 했고 계속 계획해오던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도 진전시켰다. 나는 들떴고 거짓말을 부분 부분 섞어서 말했다.
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조금 괴로웠다. 신발 속에 남아 발을 괴롭히는 모래알처럼 속이 까슬거렸다. 지금이라도 그 분에게 당장 연락해 내 약간의 경박한 태도와 내뱉은 거짓을 고해 바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연락해봤자 더 이상하게 보일거다. 민폐일거다. 아까 스케줄 간다고 하셨으니까 지금은 작업중이실거다. 무엇보다
내가 뭘 변명한단 말이야? 나에 대해 오해할까봐 두려워? 오해라뇨. 내가 들떠서 오버한 건 사실이지만 아까 그 거짓말하던 나도 나였다. 난 갑자기 오한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며 떨다가 알아버렸다.
이놈의 극! 이 극 때문이다!! 얘가 날 건드렸어. 내가 평소 잘 하지도 않던 반성에 돌입한 건 이 고약한 극 때문이라고!!
그리고 이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계속 말을 걸어댄 나무님 탓이다(?) 지금 객석을 걸어나와서도 아직 무대를 보는 기분이야.
파리의 센 강. 두 개의 다리. 등 뒤로 지나쳐버린 것. 그가 뺨을 맞은 도로. 암스테르담. 섬이었던 마을과 저속한 선원들의 술집. 여러 장소를 오가며 계속 말을 건 저 사람 때문이다. 내일 말해줄게. 날 궁금하게 해서 도망도 못 치게 만들고. 지금도 외면하기 찝찝하게 만들고.
고해 판사요? 판단 내리는 자리지만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이야. 자신을 일러 바치면서도 동시에 듣는 사람을 일러 바치는 작업이라니. ㅇㅏ 너무 약올라서 자둘해야겠다. 마침 쿠폰팩도 받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