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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그래서 많은 것을 준비했어.
달콤한 것도, 조금 쓴 것도.
익숙한 것도, 한 번쯤 궁금해할 만한 낯선 것들도.
그중 하나쯤은 네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부터 고민해.
어떤 말을 하면 웃을까.
어디에 가면 즐거워할까.
무엇을 보여주면 눈을 반짝일까.
그렇게 상대의 취향을 알아가면서,
가끔은 정작 그 사람조차 몰랐던 취향을 함께 발견하기도 해.
늘 단것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쌉싸름한 맛에 끌릴 수도 있고,
한 번도 관심 없던 무언가가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그러니 내가 준비한 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내가 잘못 준비했다는 뜻도, 네가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니까.
그저 아직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만나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어.
그럼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찾아보자.
이번에는 네가 무엇을 고르는지, 어떤 맛에 오래 머무는지 나도 궁금하거든.
물론 언젠가는 내가 준비하지 않은 것을 네가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는 조금 아쉽겠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준비한 것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보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나는 많은 것을 준비했어.
그리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또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겠지.
그 여행에서 네가 어떤 것을 발견할지,
나도 옆에서 함께 궁금해하고 싶어.
10月20日(火)の日本の天気
北海道は晴れる所が多い一方、東北の太平洋側や北陸、東海、近畿では雨に。
新潟・金沢・名古屋などでは午前を中心に激しい雨や雷に注意してください。
広島は朝の一時的な雨の後は曇り、松江も午後から曇る見込みです。
東京や高知も所によって雨。傘を用意して、穏やかな火曜日を。
10월 20일(화) 한국 날씨
중부는 구름이 많고,
남부와 제주는 대체로 흐리며 비가 오는 곳이 있겠습니다.
남부·제주의 비는 오전에 소강상태를 보이는 곳이 많겠고,
충청권은 늦은 오후부터 밤사이 비가 오는 곳이 있겠습니다.
밤에는 경기남부와 강원남부내륙·산지에도 비가 오는 곳이 있겠어요.
우산을 챙기고 비 오는 길은 천천히, 포근한 화요일 보내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청 구조에서 벌어지는 수수료 놀이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건설 현장에서도, 제조업에서도, 이제는 배달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
누군가는 실제로 일을 하고, 누군가는 그 일을 연결해 주고,
또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 말이야.
물론 중간에서 사람을 연결하고 일을 관리하는 역할도 필요하겠지.
그런데 이상한 건 중간 단계가 늘어날수록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몫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
배달 한 건을 수행하는 사람은 한 명인데, 그 배달을 둘러싼 계약과 수수료는 여러 단계로 나뉘기도 하잖아.
여기에 불법적인 명의 대여나 계정 공유까지 개입한다면 문제는 단순한 수익 배분을 넘어 책임의 문제로 이어지겠지.
생각해 보면 참 묘해.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한데,
그 일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점점 복잡해지는 거야.
그리고 이런 구조는 특정 국적의 노동자 때문이라기보다, 비용을 줄이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넘길 수 있는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어.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살펴봐야 할 건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느냐뿐만 아니라,
누가 그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면서 이익을 얻고 있느냐는 문제겠지.
하청이라는 방식 자체보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고 이익은 위에 남는 구조가 문제인 건 아닐까?
그런데 이 구조는 왜 업종만 바뀔 뿐 계속 반복되는 걸까?
지금 배달판 조용히 박살나고 있는 진짜 이유
최근 길거리에서 오토바이 타는 배달 기사들 유심히 보면
예전이랑 분위기 완전히 달라진 게 체감됨
원래 공장이나 지방 쪽 인력 부족하다고 데려온
외국인 인력들이 배달판으로 대거 넘어오는 중
문제는 대다수 비자 조건상 외국인이 배달 기사로
일하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법임
근데 일부 배달 대행 지사들이 명의 빌려주고 중간에서
수수료 떼먹는 방식으로 판을 깔아주고 있음
결국 저단가 경쟁 붙으면서 배달료 단가 계속 깎이고
내국인 기사들만 설 자리 잃고 밀려남
더 심각한 건 무면허나 대포 계정으로 타다가 사고 냈을 때
무보험이라 피해자가 나와도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는 거
정부에서 뒤늦게 플랫폼이랑 연동해서
얼굴 인증 도입한다는데 계정 공유 편법을
얼마나 잡을지는 솔직히 의문임
과거 농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어났던 구조가
이제는 우리 일상 코앞인 배달이랑 운송업까지 번지는 중임
그냥 잠깐 생각해 본 건데,
가끔은 나처럼 자기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계정도 X에 한두 개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어.
대단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야.
그냥 살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들을 적는 거지.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잖아. 그치?
꼭 정답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다들 잘 자.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
'먼저 물어봐.'
'그리고 들어봐.'
농담처럼 들리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에서 꽤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대방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믿게 되잖아?
이 사람은 분명 이걸 좋아할 거야.
이 정도는 괜찮겠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해해 줄 거야.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판단들이 대부분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거야.
상대방에게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 대답까지 만들어 놓는 거지.
그러다 예상과 다른 반응이 돌아오면 서운해하기도 해.
나는 널 생각해서 그런 건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면서 말이야.
그런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잖아.
정작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물론 모든 일을 물어보고 결정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자신의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추는 것도 좋은 관계는 아닐 거야.
하지만 상대방을 잘 안다는 자신감이 상대방에게 묻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은 조금 조심해야 할 것 같아.
특히 함께 살아가는 사이라면 더 그렇겠지.
어쩌면 배려라는 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할지 열심히 추측하는 것보다,
직접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어주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SNS는 낚시와도 비슷하지만,
어쩌면 우리 인생 그 자체와 더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인정받기 어렵고,
아무리 멋진 작품을 만들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무언가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순간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점은,
우리는 흔히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유명해졌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하거든요.
팬이 생기고,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 열광이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죠.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해요.
물론 인기가 없다고 작품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기가 많다고 반드시 훌륭한 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라는 건 결국 수요와 공급,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에서 자유롭기 어렵잖아요.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이 멋지다고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인 거죠.
그래서 SNS가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지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는 수년 동안 다듬은 글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누군가는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도 하죠.
마치 우리 사회의 인정과 경쟁,
수요와 공급을 아주 빠른 속도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 같아요.
그럼 우리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믿게 되는 걸까요?
어쩌면 SNS에서 우리가 낚으려는 건 사람들의 관심이지만,
정작 그 관심에 가장 많이 흔들리는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겠어요.
세상 모든 게 그렇겠지만 X라는 SNS는 진짜로 낚시 같소.
사람들 시선을 끌어야 반응이 오고,
반응이 와야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오.
아무리 좋은 말도 아무도 안 읽으면 없는 글이나 다름없고,
별거 아닌 말도 사람들 마음을 건드리면 수만 명이 보게 되오.
결국 중요한 건 무슨 말을 하느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 말을 지나치지 못하는가 인 것 같소.
글을 쓰는 건 낚싯대를 던지는 일이고,
콘텐츠는 미끼를 고르는 일이며,
알고리즘은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 바다 같소.
다만 낚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낚았다고 해서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요.
가끔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기도 해.
나에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참 힘들고 슬픈 일이야.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기다린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정말 이 사람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말도 하고,
자존심도 내려놓고,
어떻게든 한 번만 더 마음을 전해 보려고 애쓰게 되는 거지.
사실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상대방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쉽게 돌아서지 못하겠더라.
참 이상하지 않아?
평소에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고민에는 그럴듯한 조언도 잘하면서 정작 내 마음이 걸린 일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잖아.
어쩌면 기다리는 동안 가장 힘든 건 상대방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아직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걸지도 몰라.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 확인하고,
아무 의미 없는 작은 변화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싶은 건 아니야.
마음이라는 게 내가 간절하다고 해서 상대방도 똑같이 느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저 내가 아직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플 뿐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걸 알면서도 가끔은 그래.
정말 가끔은.
안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놓아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한 번만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와 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저 아직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조금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
운이 나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운을 바꾸는 일일까?
나는 오히려 잠깐의 환기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살다 보면 유난히 모든 일이 안 풀리는 날들이 있잖아?
그럴 때는 평소에 신경 쓰던 것들도 하나씩 귀찮아지더라고.
옷을 고르는 일도,
머리를 정리하는 일도,
방을 청소하는 일도 말이야.
그런데 가끔은 별생각 없이 머리를 자르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나갔을 뿐인데 기분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잖아?
방 안의 가구 위치를 바꾸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그렇고.
물론 그렇게 한다고 나쁜 일이 갑자기 좋은 일로 바뀌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
그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는거니까.
어쩌면 우리가 꾸미고 정리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건 운을 불러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답답함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한 행동인지도 몰라.
생각해 보면 재밌는거 같아. 그치?
바깥세상은 어제와 똑같은데,
머리 하나 바꿨다고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운이 좋아져서 나를 가꾸는 게 아니라,
나를 가꾸면서 다시 무언가를 해볼 마음이 생기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 아닐까?
그러니까 오늘 유난히 일이 안 풀렸다면,
운세를 확인하기 전에 창문부터 한번 열어보는 건 어때?
운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적어도 방 안의 공기는 달라질 테니까. 😁
왜 우리는 운에도 총량이 있다고 생각할까?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면 괜히 불안해질 때가 있잖아?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반대로 나쁜 일이 계속되면 이제 슬슬 좋은 일이 생길 차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우리는 운이라는 게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정해진 양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거든.
오늘 운이 좋았으니까 내일은 조금 덜 좋을 거라거나,
지금까지 불행했으니까 앞으로는 행복할 차례라는 식으로 말이야.
어쩌면 이건 세상이 공평했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람 때문인지도 몰라.
누군가 계속 좋은 일만 겪는 것도,
누군가 계속 나쁜 일만 겪는 것도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지잖아. 그치?
그래서 우리는 운에도 일종의 균형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동전을 열 번 던져 앞면이 나왔다고 해서 열한 번째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건 아니잖아.
운도 반드시 그렇게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겠지.
물론 살아가면서 쌓은 경험이나 인간관계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은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건 정해진 운을 꺼내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닐까?
어쩌면 운의 총량을 믿는 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행복과 불행에 이유를 붙이고 싶어서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궁금해지네.
우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왜 마음껏 기뻐하기보다,
그다음에 찾아올 불행부터 걱정하는 걸까?
아직 쓰지도 않은 운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면서 말이야. ㅋㅋㅋ
결혼하는 사람이 평생 함께할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오히려 저 말에 꽤 동의하는 편이야.
사람을 만나는 데 조심스럽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어려운 사람일수록 말이야.
친구가 많고 적고의 문제라기보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 사람에게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일 것 같거든.
굳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매번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편안한 사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바라는 것들도 그런 모습 아닐까?
그런데 결혼은 그 사람과 일상을 함께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거잖아.
물론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결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결혼했다고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배우자 한 사람에게 모든 인간관계를 대신해 달라고 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중 단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은 참 특별하다고 생각해.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군가를 다시 믿고,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지는 일 자체가 큰 의미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는 결혼할 사람이 단순히 연인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으면 좋겠어.
나이가 들어서도 시시한 농담에 같이 웃고,
별것 아닌 일로 장난치고, 가끔은 서로의 고민을 가장 먼저 들어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라니.
생각만 해도 꽤 근사한 관계 아닐까?
그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왜 싸우게 될까?
생각해 보면 이런 갈등이 처음은 아니야.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는 필사하던 사람들의 일이 달라졌고,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는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새로운 경쟁자를 만났어.
드럼머신이 등장했을 때는 실제 드러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술들이 기존의 예술을 전부 없애지는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새로운 표현 방식이 생기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잖아.
그렇다고 새로운 기술이 언제나 옳았다는 뜻은 아니야.
누군가는 실제로 일자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평생 쌓아온 기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경험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AI를 둘러싼 갈등도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의 작품이 허락 없이 이용되는 문제와 새로운 도구로 작품을 만드는 문제는 구분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져.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무엇을 지키려고 했던 걸까?
자신이 쌓아온 기술일까? 그 기술로 살아갈 수 있었던 환경일까? 아니면 그동안 인정받아 온 창작자로서의 가치일까?
어쩌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섞여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건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그 변화 속에서 사람의 노력과 창작을 어떻게 존중할 것이냐는 문제 아닐까?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도, 오랫동안 자신의 손으로 작품을 만들어 온 사람도 결국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잖아. 그치?
AI 생성물을 순수 창작 생태계 쪽에
상업적으로 풀어놓을시에는 정말 조심해야함.
모든 그 쪽 창작가들을 적대시하는 경우가 생김.
안그래도 과거부터 쌓아온 악감정이 지금
언제 터질락 말락 풍선같이 부풀어오르고 있는데...
괜히 바늘가지고 터트릴 이유는 없음.
한가지 최근에 본 예외 케이스가 있었는데
일본에 AI 만화 생성자와 순수 일러스트레이터가
엑스에서 막고라 뜨고
실제로 만난 케이스가 있었는데
그 후 절친이 된 케이스가 있긴 했었음.
그러한 변태적인 이상 케이스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지금 현재 분위기로서는
그 기존 장르 개척자 분들에게
돌이 날라올 각오는 해야함.
여행 유튜버가 개꿀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보통 여행을 가려면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하잖아?
그런데 여행 유튜버는 여행 자체가 일이 되는 거야.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고 수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있어.
사업자로 활동하는 유튜버라면 콘텐츠 제작과 직접 관련된 여행 경비를 사업상 필요경비로 인정받을 수도 있거든.
물론 여행한다고 무조건 세금 공제를 받는 건 아니야.
실제 사업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개인적인 여행 비용까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리고 필요경비로 인정된다고 여행비 전액을 돌려받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재미있지 않아?
누군가에게는 돈을 모아서 떠나는 여행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출장이 되는 거잖아.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한 사람에게는 소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사업 활동이 되는 거야.
물론 촬영하고 편집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마냥 편한 일은 아닐 거야.
하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건 단순히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즐기는 일을 수익과 연결할 수 있다는 구조 아닐까?
어쩌면 진짜 부러운 건 여행 유튜버라는 직업보다,
남들에게는 소비인 일이 자신에게는 수익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어.
고마운 사람에게 오히려 연락하지 못했던 적 있어?
몇 번 글로 적었던거라,
다들 알겠지만,
일본에서 박사과정 유학생 주제에,
히키코모리였던 적이있었다고 했잖아.
정말 미칠 것처럼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어.
그런데 정작 그 어둠 속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던 때였지.
그때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어.
당연히 고마워해야 했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표현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하는 게 더 어려워지더라고.
처음에는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연락하지 못했던 시간까지 미안해지는 거야.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동안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또 한달을 보내고,
또 몇 년을 보내게 됐어.
참 이상하지 않아?
싫어진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는 건 이해하기 쉬운데,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오히려 연락하지 못하는 관계도 있다는 게 말야.
여전히 가끔 그분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져.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지역에서 한국어 강좌(한국어 회라고도 해)의 회장직을 맡고 계실까?
여전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주고 계실까?
나는 아마 그러고 계실 거라고 믿어.
그분에게 나는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 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거든.
이 글을 쓰면서도 연락 한번 드리면 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어쩌면 아직도 그때의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까.
고마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데,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은 왜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걸까?
언젠가는 꼭 말씀드리고 싶어.
그때 손 내밀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그리고 너무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오늘도 아마 전하지 못 할 거야. 참 이상한 일이지..
〈우리가 SNS에서 쓰는 가면〉
우리는 SNS에서 저마다 하나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늘 밝고, 어떤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말 매일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까.
하루 종일 웃긴 글을 올리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말수가 적을 수도 있고,
남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정작 자기 고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늘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게시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몇 번씩 문장을 고칠지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
글을 쓸 때는 제법 생각이 정리된 사람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문제도 많다.
어떤 날은 마음이 복잡한데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어떤 날은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놓는다.
그런데 나는 이걸 전부 거짓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조용한 사람이 SNS에서 수다스러울 수 있고,
평소에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글에서는 진지할 수도 있다.
둘 중 하나가 가짜일 필요는 없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그 가면 하나로 상대의 전부를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글 몇 개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고,
사진 몇 장으로 삶의 행복을 짐작하고,
댓글 하나를 읽고 어떤 사람인지 결론 내리는 것.
그러다 실제 모습이 조금 다르면 이야기한다.
“생각했던 사람이랑 다르네.”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적은 부분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SNS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고를 수 있다.
그렇다고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늘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하기 싫은 하루가 있고,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SNS를 보며 그 사람을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보여주는 모습이 나의 전부라고 믿지도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SNS에서 저마다 가면을 쓴다.
하지만 가끔은 그 가면 덕분에 현실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쩌면 SNS의 가면은 나를 숨기기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꺼내기 위해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면을 벗기려고 하기보다,
그 안에 아직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궁금한 사람이 생겼는데, 다가가도 괜찮을까?
가끔 그런 순간 있지 않아?
어떤 사람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순간 말이야.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일까?
평소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한번 대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데 막상 말을 걸어보려고 하면 조금 망설여져.
갑자기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괜히 혼자 친해지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상대방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몇 번을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기도 해.
참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면 반가워하면서도,
정작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건 조심스러워하잖아.
그치?
물론 모든 관심이 상대방에게 반가운 건 아니겠지.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낯선 사람의 관심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
우리가 서로를 배려한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서로에게 다가갈 기회까지 너무 조심스럽게 접어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마음 자체가 실례는 아닐 텐데 말이야.
어쩌면 관계라는 것도 거창한 계기보다 아주 사소한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겠지.
"안녕하세요. 글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 정도의 말이라면 건네봐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대답할지 말지는 상대방의 자유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궁금한 사람이 생기면 또 한참을 망설일 것 같아. ㅋㅋㅋ
혹시 여러분도 궁금했지만 끝내 말을 걸지 못한 사람이 있어?
난 아마 이글을 읽고 있을 .. 너였을거 같아.
중고 거래에서도 묶음 상품은 더 저렴해야 할까?
오늘 중고 물건을 조금 더 싸게 사보려다가 실패했어. ㅋㅋㅋ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면 판매자도 편하고,
나도 조금 저렴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게 참 재미있는 문제더라고.
마트에서는 묶음 상품이 낱개보다 저렴한 게 자연스럽잖아?
포장이나 유통 비용도 줄어들고, 한 번에 많이 팔 수 있으니까.
중고 거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판매자는 여러 사람과 연락하고 약속을 잡을 필요 없이 한 번에 물건을 정리할 수 있고,
구매자는 그 편리함만큼 가격을 조금 할인받는 거지.
그런데 판매자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어차피 하나씩 팔아도 충분히 팔릴 물건이라면 굳이 할인해 줄 이유가 없는 거잖아?
결국 묶음 할인의 가치는 물건의 개수보다 판매자가 얼마나 빨리,
편하게 처분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나는 여러 개를 사주니까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판매자는 여러 개를 판다고 싸게 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둘 다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거야.
그런데 여기서 조금 웃긴 사실을 발견했어.
나는 분명 돈을 아끼려고 여러 개를 사려던 건데,
어느 순간 여러 개를 사는 이유가 할인을 받기 위해서가 되어버린 거야.
아, 이래서 중고 거래도 심리전이라고 하나 봐. ㅋㅋㅋ
집값이 떨어지면 정말 경제가 살아날까?
집값이 저렴해지면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고,
그만큼 사람들이 소비와 투자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는 원문 이미지의 이야기잖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이야.
그런데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어.
부동산은 누군가에게는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이기도 하거든.
집값이 내려가면 새롭게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자산이 줄었다고 느끼면서 소비를 줄일 수도 있고,
대출이 많은 가구는 집값이 떨어져도 빚이 그대로 남아 더 어려워질 수 있지.
은행 역시 담보 가치가 하락하고 부실대출이 늘어나면 대출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지.
생각해 보면 참 묘하다?
집값이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느라 소비를 줄이고,
집값이 급격하게 무너지면 자산과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또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거야.
결국 집값 하락과 경제성장 사이에는 단순한 비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여기서 중요한 건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보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주거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경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움직이느냐는 문제 아닐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궁금한건 말야..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부동산 가격의 폭락일까?
아니면 평범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사회일까?
어쩌면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건 집값 그 자체보다,
집 한 채에 인생의 너무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구조인지도 모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