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 장군의 소신에서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길을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이틀간 계룡대에서 육해공군 국정감사를 진행합니다.
국정감사에 앞서 3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계룡대에 마련된 채명신 장군의 사진과 업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장군의 사진을 보니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마주했던 묘비 하나가 떠오릅니다.
채명신 장군은 3성 장군이었지만 장군 묘역이 아닌 사병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생전에 자신과 함께 싸웠던 파월 장병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대표 시절, 민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채명신 장군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올해 현충일에도 다시 찾았습니다. 장군의 계급장보다 함께 싸운 전우들을 먼저 생각했던 그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습니다. 당시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대장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채 장군은 이에 맞서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지켜냈습니다. 대한민국 군인의 지휘권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확보한 한국군은 우리 실정에 맞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채 장군은 중대 단위의 방어진지를 구축해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중대전술기지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두코전투와 짜빈동전투는 이러한 한국군의 전술과 전투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군의 지휘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군 스스로 판단하고 작전을 수행해 거둔 성과였습니다.
채명신 장군의 소신은 역사 앞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백선엽 장군을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한 것입니다. 6·25전쟁에서 세운 공적은 인정하되,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비롯한 항일세력 토벌에 동원됐던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까지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공적이 독립운동 탄압의 과거를 지워줄 수는 없다는 분명한 역사인식이었습니다.
전작권 전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미가 합의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안보 환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기준을 내세운다면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을 되찾지 못해야 합니까? 60여 년 전 베트남 전쟁터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지켜냈던 채명신 장군께서 오늘의 현실을 보신다면 얼마나 통탄해하시겠습니까.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시작전권을 회수하더라도 한미간 긴밀한 협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맹에만 의존한 채 우리 스스로 정보자산을 강화하고 전시작전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우리 국가안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동맹이 강할수록 우리 군의 자주적 역량도 함께 강해져야 합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추친해 온 자주국방의 정신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감축 논란 문제가 거론되더라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자주적 자세와 실질적인 방위역량을 갖춰야 동맹국과의 협상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이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동맹을 굳건히 하되,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을 키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주국방이며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삼전과 하이닉스의 주주환원,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갑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한민국 경제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사의 합산 실적이 연간 수백조 원대 규모로 점쳐지고, 분기 영업이익 합산이 170조 원을 넘는 역대급 성적표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성과 덕분에 국가 재정 수입과 세수 여건 또한 한층 개선되어, 정부가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다지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성과의 일등 공신은 단연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해 온 최고 경영진의 결단과 종사자들의 헌신입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 속에서 과감한 투자와 기술 혁신을 이뤄내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작동합니다. 누구나 자본을 투자하고 경영에 참여하여 그 손익을 함께 분담하는 구조가 오늘의 풍요를 만들어 냈으며, 두 기업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주주의 이익 보호와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상법 개정을 추진한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합니다.
양사의 이 같은 역대급 성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여전히 실적에 미치지 못하는 저평가 국면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JP모건)과 해외 자산운용사 등 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 이탈과 밸류에이션 하락(멀티플 디레이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의 성공 방정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꾸준한 소각, 예측 가능한 주주환원 프레임워크를 일관되게 실행해 왔습니다. 이 같은 강력한 주주환원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 장기적인 밸류에이션 재평가(Re-rating)로 이어졌고, 세계 최고의 시가총액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 반도체 대표 기업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틀에 갇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주주환원과 소통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메가프로젝트 투자나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 배분 등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기(失期)의 위험성 역시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두 기업은 이미 국민적 자산이자 대다수 국민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국민의 기업'입니다. 기업의 성과가 주주와 국민의 실질적인 이익으로 환원될 때 비로소 진정한 선순환 구조가 완성됩니다. 기업의 가치는 주주와의 신뢰 위에서만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야 더 멀리 갑니다. 양사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과감하고 구체적인 주주환원 대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에 화답하고,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선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국민과 주주의 마음을 얻는 경영이 곧 가장 강력한 성장 전략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국정감사 현장점검을 이어갔습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육군 제31보병사단 145레이더기지를 방문하고, 목포 해군 제3함대사령부에서 최신 호위함 경남함에 올랐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역사를 돌아보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1944년 경성정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를 만들던 기업이 1973년 방위산업에 진출하고, 군용차량 수출과 전문 연구소 설립을 거쳐 2008년 광주에 군수차량 전용공장을 세웠습니다. 외환위기의 시련도 겪었지만, 오늘날 세계 시장을 누비는 자동차 기업이자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목포 해군 제3함대사령부는 동해의 제1함대, 서해의 제2함대와 함께 남해를 책임지는 '상승함대'입니다. 항상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목포에서 부산까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 있는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429년 전인 1597년, 이순신 장군은 불과 13척의 배로 명량해전에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오늘 그 바다를 지키는 경남함은 2,800톤급, 최고 시속 55km의 성능을 갖춘 최신 호위함입니다. 직접 승선해 우리 해군의 발전된 기술력을 확인했습니다.
145레이더기지에서도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장병들의 임무 수행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자전거에서 첨단 군용차량으로, 판옥선에서 최신 호위함으로. 이제 대한민국은 첨단 무기체계를 스스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국방력을 갖추었습니다.
강한 국방력은 첨단 기술과 장병들의 역량이 함께할 때 완성됩니다. 국방위원으로서 우리 군의 전력을 더욱 튼튼히 하고, 장병들이 자부심을 갖고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47주년 전, 부산과 마산의 함성이 광주의 한 고등학생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유신독재에 맞선 저항은 마산으로 번졌습니다.
그로부터 9일 뒤인 10월 25일, 광주대동고 운동장에 저와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학생들이 낸 보충수업비가 정작 수업을 맡은 선생님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재단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교시가 끝나자 운동장에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시위였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친구들 앞에서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학내 문제로 시작된 시위였지만, 부마항쟁의 열기가 광주로 번질 것을 우려한 공안 당국은 저를 비롯한 몇몇 학생을 광주 서부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습니다. 유신독재가 막을 내린 것입니다.
어리둥절한 마음도 잠시, 이제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부산과 마산에서 시작된 저항이 독재의 끝을 앞당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봄이 머지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어떤 시간을 지나게 될지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부산과 마산에서 펼쳐진 저항은 광주의 한 고등학생에게도 닿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섰던 그날을 떠올리며, 부마민주항쟁 47주년을 맞습니다.
[GTX-B 청학역 중앙투자심사 통과! 연수구민과 함께 이뤄낸 결실입니다]
오늘 GTX-B 청학역 추가 정거장 설치 사업이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마침내 통과했습니다. 청학역 신설을 염원해 오신 연수구민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이번 중앙투자심사는 청학역 신설의 중대한 고비였습니다. 올해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예산 확보가 어려워지고, GTX-B 본선과 동시 개통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연수갑 보궐선거에서 GTX-B 청학역 신설과 제2경인선 건설을 핵심 교통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지난 7월 중앙투자심사가 의뢰된 이후 행안부에 사업의 시급성을 직접 전달하고, 인천시와 함께 추진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했습니다. 민주당 당정협의회를 비롯한 가능한 모든 통로를 활용해 심사 통과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지난 9월에는 연수구청 앞에서 청학역 신설을 촉구하는 주민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행정절차 지연이 청학역 신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습니다.
박찬대 인천시장께서 연수갑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을 설득하며 기울여 오신 노력도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청학역 신설의 경제성이 확인되면서 사업 추진의 중요한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오늘의 성과는 오랫동안 청학역 신설을 위해 애써 오신 주민 여러분과 박찬대 시장, 민주당 정부와 인천시, 국회가 함께 만들어 낸 결실입니다.
큰 관문을 넘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남은 행정절차와 예산 확보, 공사 일정까지 빈틈없이 챙기겠습니다. 2031년 GTX-B 본선 개통에 맞춰 청학역도 함께 문을 열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송영길 #박찬대 #연수갑 #인천시 #민주당 #청학역
[국정감사 현장점검을 위해 광주 군공항에 왔습니다]
활주로와 주요 시설의 운영 실태와 안전관리 현황을 직접 확인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현장점검에 앞서 광주 제1전투비행단 정문에서 탄약고 이전을 요구하며 시위 중인 인근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잠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했습니다. 오랜 시간 불편과 걱정을 안고 살아온 주민들의 목소리도 무겁게 들었습니다.
군의 작전 수행과 장병들의 안전에 작은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군사시설 인근 주민들의 안전과 생활권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국방위원으로서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점은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진정한 평화의 길]
-월남전 참전 62주년 기념식에서 마주한 화해와 평화의 의미
월남전 참전 62주년 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베트남 전선으로 떠나셨을 때, 고향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님과 아내, 어린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전우들과 함께 견뎌내신 세월을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저는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이셨던 고 채명신 장군을 깊이 존경합니다. 2021년 민주당 당대표로는 처음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채명신 장군 묘역을 참배했고, 올해 현충일에도 다시 찾았습니다. 채 장군은 생전에 함께 싸웠던 부하 장병들 곁에 묻히기를 원해 장군 묘역이 아닌 사병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또한 월남전 당시 미군의 일방적인 지휘에 따르지 않고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논의하는 오늘날에도 깊이 새겨야 할 정신입니다.
기념식에서 본 아카이브 영상도 인상 깊었습니다. 베트남이 우리 참전용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함께 전쟁 희생자들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이화종 회장님께서는 지난 9월 베트남 다낭시의 평화의 마을과 고엽제·다이옥신 피해자 보호시설 등에 4억 7천만 원 상당의 위문품을 전달하셨다고 합니다. 이화종 회장님께서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신 말씀도 깊이 남았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분들이기에 평화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제의 적에게 먼저 손을 내민 우리 참전용사들과 그 손을 따뜻하게 맞잡고 함께 전쟁 희생자들을 참배한 베트남의 모습에서, 전쟁의 상처를 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진정한 평화의 길을 봅니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1992년 대한민국과,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과거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도 이제는 국방·안보 분야까지 협력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2025년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1,5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중국과도 활발하게 교역하며 경제협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때 총을 겨누었던 나라들이 이제는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적대관계에 갇혀 있지 않는 것, 그것이 평화이고 외교의 힘입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동시에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접경지역 인천에서 시장으로 일하고, 민주당 대표를 거쳐 지금 국회 국방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친 분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보훈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국회 국방위원으로서 참전유공자 여러분의 명예를 높이고, 생활 안정과 의료·복지 지원을 확대하는 데 끝까지 힘쓰겠습니다.
HMM부산시대 개막,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릅니다. 축하드립니다.
<북극항로와 HMM 부산 시대, 남부 해양수도권의 닻을 올립니다>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치고 돌아온 팬스타 아크로호 선원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컨테이너선이 북극을 건너 유럽을 오간 첫 항해였습니다. 홍해를 통해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운항기간을 열흘 가까이 줄였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소임을 다해 주신 선원 여러분과 이 항해를 뒷받침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한 HMM을 찾았습니다. 국내 최대 해운기업 HMM의 부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새 바닷길과 HMM의 부산 시대가 남부 해양수도권 도약과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50일간의 항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바닷길을 열었습니다]
오늘 부산항에서 50일간의 북극항로 왕복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친 ‘팬스타 아크로호’의 귀환 환영 행사가 열렸습니다.
저는 무사 귀환 소식을 듣고 서명원 선장님께 곧바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거친 북극해를 헤치고 돌아온 선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거친 바람과 낯선 항로의 위험을 이겨내며 50일간 항해를 완수한 선원 여러분께도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꿈의 항로로 여겨졌던 뱃길을 우리 선원들이 직접 열었습니다. 국내 선사 컨테이너선 최초의 북극항로 왕복 항해입니다.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운항 거리와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바다의 실크로드'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에게 북극항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17년 5월, 러시아 특사로 모스크바로 떠나면서 북극항로 공동 개척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에도 북방경제협력의 미래를 논의했습니다. 분단으로 대륙을 향한 길이 막힌 대한민국에 북극항로는 유라시아로 나아가는 새로운 통로였습니다.
이듬해 1월에 찾았던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도 생생합니다. 북극의 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쇄빙 LNG 운반선 '야말 5호'를 찾았습니다. 영하 52도의 혹한을 견디도록 만든 배였습니다. 조타실에서 뱃고동이 울려 퍼지던 순간, 우리 기술로 북극의 바닷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해 6월, 북방경제협력위원장으로서 '북극항로 진출을 통한 해운·조선 신시장 개척'을 신북방정책의 중점 과제로 구체화했습니다. 2021년 울산에서 열린 제3차 한러 지방협력포럼에서도 러시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과 부랴티야 공화국 수반 등 러시아 주요 인사들과 함께 북극항로 개척을 비롯한 북방경제협력의 미래를 논의했습니다.
북방외교의 현장에서 뿌린 씨앗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싹을 틔우는 것 같아 감회가 남다릅니다. 대한민국은 바다를 통해 성장한 나라입니다. 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세계적인 배를 만들고 오대양을 누비며 무역강국을 일궜습니다. 그 중심에는 조선 기술자들과 선원들의 땀과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번 50일간의 항해는 대한민국 해운·물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입니다. 북극의 빙해를 넘어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오늘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부산을 찾아 서명원 선장님과 선원들을 직접 격려하셨습니다. 북극항로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물류 통로로 발전시키고 부산을 북극항로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구상에도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북극항로는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선원들의 안전을 지키고 항로의 경제성을 높이며, 국제협력과 항만·물류 기반을 갖춰야 합니다. 이번 항해가 일회성 도전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대동맥으로 이어지도록 국회에서도 힘껏 뒷받침하겠습니다.
서명원 선장님과 선원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역사적인 북극항로 왕복 항해 성공과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대한민국, 북극항로 시대를 맞이합니다>
오늘 오전 8시경,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친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긴 항해 정말 고생 많으셨고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8월 22일 시작한 이번 항해로 기존 수에즈 운하 경유 항로보다 편도 운항기간을 10일 단축했고, 우리 컨테이너 선박의 극지 운항 경험과 항해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항해를 이끌어주신 선원 여러분과 시범운항을 지원해 주신 모든 분,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북극항로 시대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부산과 동남권을 '남부 해양수도권'으로 도약시키고, 새로운 바닷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지역구를 이어받은 후배 정치인의 마음으로]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7주기를 맞아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죽산 조봉암 추모음악회에 함께했습니다.
1959년 7월 31일, 4·19혁명을 불과 9개월 앞두고 죽산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평화통일을 외치고 농민과 서민의 삶을 위해 헌신했던 정치인. 그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저에게 죽산 선생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제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곳이 바로 죽산 선생께서 정치활동을 펼치셨던 인천 계양·부평 지역입니다.
죽산 선생의 지역구를 이어받았다는 생각에 후배 정치인으로서 남다른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왔습니다.
오늘날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분단과 대결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외쳤던 죽산 선생의 목소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지역의 청소년과 젊은 세대 가운데 죽산 조봉암이라는 이름을 잘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인천 부평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정치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이 알고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추모음악회가 더욱 소중합니다. 음악을 통해 죽산 선생을 기억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그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역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과 청소년이 함께할 수 있도록 추모음악회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죽산 선생께서 못다 이루신 평화와 통일의 꿈, 그 뜻을 이어받아 오늘의 현실 속에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님을 깊이 추모합니다.
송영길(SONG, Young Gil) retweeted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축하합니다>
오늘 우리 기술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의 첫 시험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 탐지와 요격이 어려워, 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꿀 첨단 무기체계로 꼽힙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긴 시간 묵묵히 땀 흘려 온 연구진과 군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하늘로 쏘아 올린 미사일 한 발에는 우리 기술로,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자주국방은 구호가 아니라 기술과 실력으로 증명됩니다. 앞으로도 극초음속 추진, 인공지능, 고출력 레이저 등 첨단 국방기술에도 흔들림 없이 투자해 나가겠습니다.
송영길(SONG, Young Gil) retweeted
<순수한 급진성도 문제이겠지만, 능력도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고 인사나 국가정책까지 자기뜻대로 하려다가 잘 안되니 대의명분 삼아 급진개혁 내세우며 내부 공격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기사 본문중)무엇이 동지를 적으로 바꾸었는가. 출발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순수한 열망이었다. 비극은 그 열망이 절대가 되면서 시작됐다. 혁명이 문턱에 와 있다고 믿는 순간, 장애물은 타방(他方)의 적만이 아니라 아방(我方)에서 걸음을 늦추는 사람이 된다.
마침내 전도가 일어난다. 혁명을 위해 동지를 치는 것이 아니라, 동지를 치는 일 자체가 혁명이 돼버린다.
(중략)희생적 투쟁에 몸과 마음을 맡길 때 투사들은 순수 그 자체였지만, 혁명(자기희생적 운동)이 체제(권력)가 되는 순간 순수의 근저에 이익의 시선이 흘러들고 자기정치와 자기 집단정치의 동학이 작동한다.
v.daum.net/v/202610082015448…
[한글 580년, 인천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길]
오늘은 580돌 한글날입니다.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뜻깊은 한글날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2013년, 제가 인천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세계의 문자와 문명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이 처음 제안됐습니다. 당시 저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오가는 국제도시 송도가 박물관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부지 준비와 유치에 관심을 기울였던 곳에서 오늘 한글날을 기념하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2023년 6월 문을 연 박물관에는 벌써 3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세계의 문자와 문화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천을 찾았습니다. 10여 년 전 시작된 구상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뜻깊습니다.
1446년 세종대왕은 글을 몰라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반포했습니다. 창제 원리까지 기록으로 남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한글입니다.
480년 뒤인 1926년, 인천 강화 출신 송암 박두성 선생은 여섯 개의 점으로 또 하나의 세상을 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시각장애인 아이들은 일본어 점자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박두성 선생은 우리말을 하면서도 우리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우리말을 손끝으로 읽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올해는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입니다. 마침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강화에서 태어난 박두성 선생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여섯 개의 점이 100년의 세월을 건너 세계의 문자들과 나란히 놓였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580년이 흐른 오늘, 한글은 세계인의 입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미국 뉴저지의 BTS '아리랑' 공연장에서는 8만 명 가까운 관객이 우리말로 '아리랑'을 함께 불렀습니다. 객석에는 '방탄 때문에 한국어 배워요'라는 한글 응원 문구도 보였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이 광경을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제가 인천시장 시절 송도글로벌캠퍼스 유치에 힘썼던 것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세계로 나가는 것만큼 세계의 청년들도 인천에 와서 공부하고,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며 서로 친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2012년 한국뉴욕주립대가 45명의 학생으로 문을 연 뒤 조지메이슨대, 유타대, 겐트대가 잇따라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50여 개국 출신을 포함해 4,500여 명의 청년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강의실에서는 영어로 토론하고, 거리에서는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는 청년들. 인천에서 만난 우리말과 문화를 다시 세계로 전하는 것, 그것이 제가 꿈꾸던 인천의 미래였습니다.
글을 몰랐던 백성이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손끝으로 읽게 되고, 이제는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어로 노래합니다. 한글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580년의 길입니다.
올해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처음 '가갸날'을 기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에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뜻을 되새깁니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발전시켜 온 모든 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580년 전 백성을 위해 태어난 한글은 오늘 세계인의 노래가 되고, 인천에서 세계의 문명과 만납니다.
송영길(SONG, Young Gil) retweeted
<길을 떠나기 전에 동반자를 택하라, 이집트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걷겠습니다.>
10년 만에 대한민국을 방문해주신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님(@AlsisiOfficial)을 환영합니다.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제가 카이로를 방문한 데 이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님께서 서울을 찾아주셨습니다.
카이로에서 약속한 평화와 번영, 문화 융성을 위한 협력은 오늘 서울에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공동성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양국 간 협력 문건 12건도 체결·개정했습니다.
아프리카·중동의 경제 대국인 이집트는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이자 우리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해 있는 중요한 협력국입니다.
오늘 양국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고,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이집트와 사회보장협정도 체결했습니다. 교역과 투자를 넘어 경제와 사람을 잇는 협력의 폭을 더욱 넓혔습니다.
대한민국의 조선 역량으로 이집트의 친환경 조선산업 발전을 돕고, 청정에너지 협력으로 양국의 에너지 전환을 함께 이뤄가겠습니다. 국방·방산 분야의 협력도 꾸준히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저와 알시시 대통령님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습니다. 모든 선박의 자유롭고 안전한 항행과 국제 해상물류의 원활한 흐름이 중요하다는 점도 재확인했습니다.
저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설명했고, 알시시 대통령님께서는 이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동반자를 택하라’는 아랍 속담처럼, 이제 한국과 이집트는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약속을 두 나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만들어내겠습니다. 지난해 카이로대학에서 발표한 ‘샤인(S.H.I.N.E.) 이니셔티브’의 이름처럼, 한국과 이집트의 새로운 여정이 더욱 밝게 빛나기를 기대합니다.
<اختر الرفيق قبل الطريق، سأسلك طريقا جديدا مع مصر>
إنني أرحب بفخامة رئيس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عبد الفتاح السيسي الذي قام بزيارة دولة إلى جمهورية كوريا لأول مرة منذ 10 أعوام.
عقب زيارتي للقاهرة العام الماضي بمناسبة الذكرى الثلاثين عاما لإقامة العلاقات الدبلوماسية بين البلدين، شرّفنا فخامته بالقيام بزيارة سيول بعد أقل من عام.
وقد وصل التعاون من أجل السلام والرخاء والازدهار الثقافي الذي اتفقنا عليه في القاهرة، اليوم في سيول، إلى البيان المشترك للارتقاء بالعلاقات بين البلدين إلى مستوى "الشراكة الاستراتيجية". كما تم توقيع وتعديل ما مجموعه 12 وثيقة تعاون.
تُعد مصر قوة اقتصادية كبرى في منطقة إفريقيا والشرق الأوسط، وشريكا تجاريا رئيسيا لنا حيث تعمل شركاتنا هناك بشكل نشيط.
اليوم، أعلن بلدانا رسميا بدء المفاوضات بشأن اتفاقية الشراكة الاقتصادية الشاملة (CEPA)، وأصبحت كوريا أول دولة آسيوية تبرم مع مصر اتفاقية للضمان الاجتماعي مما يرسي قاعدة متينة لتعاون اقتصادي واسع النطاق يتجاوز التجارة والاستثمار.
سنساهم بقدرات كوريا في بناء السفن في تطوير صناعة بناء السفن الصديقة للبيئة في مصر، وسنحقق سويةً التحول في مجال الطاقة عن طريق التعاون في الطاقة النظيفة. كما سنواصل التعاون في مجالي الدفاع والصناعات الدفاعية بشكل أوسع.
اتفقنا أنا وفخامة الرئيس السيسي على ضرورة استعادة السلام والاستقرار في منطقة الشرق الأوسط في أقرب وقت ممكن. كما أكدنا مجددا على أهمية الملاحة الحرة والآمنة لجميع السفن، وانسيابية حركة النقل البحري الدولي.
وشرحتُ جهودنا لتخفيف التوتر وبناء الثقة في شبه الجزيرة الكورية، وأعرب فخامة الرئيس السيسي عن دعمه الكامل لهذه الجهود. أشكر فخامته جزيل الشكر.
مثلما يقول المثل العربي: "الرفيق قبل الطريق"، أصبحت كوريا ومصر رفيقين سيسلكان طريقا جديدا معا.
أتطلع إلى أن تكون الرحلة الجديدة للبلدين أكثر إشراقا، كاسم "مبادرة شاين (.S.H.I.N.E)" التي أعلنت عنها في جامعة القاهرة العام الماضي، من خلال ترجمة وعود اليوم إلى نتائج ملموسة يشعر بها شعبا البلدين.
[고흥에서 대한민국이 우주로 날아올랐습니다]
제 고향 고흥에서 누리호 5차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참으로 벅차고 감격스럽습니다.
고흥을 한자로 풀면 높을 고(高)에 흥할 흥(興)입니다. 오늘 이 순간과 참 닮은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의 꿈이 고흥에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러시아와 협력해 나로호를 만들었습니다. 페어링 분리 실패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고 기술을 쌓아온 우리가 이제는 우리 손으로 만든 누리호에 15기의 위성을 싣고 우주로 보냈습니다.
누리호 역사상 가장 많은 위성입니다. 여러 위성을 차례로 정확히 제 궤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뜁니다. 생각할수록 놀랍고 벅찹니다. 대한민국 우주기술의 진보가 정말 경이롭습니다.
저는 2021년 10월 21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표로 나로우주센터 연구동에서 누리호 첫 발사를 직접 지켜봤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손에 땀이 났습니다. 잠시 뒤 태극마크를 단 누리호가 거대한 불기둥을 뿜으며 고흥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가 처음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데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목표 고도 700km까지 올라갔지만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K-스페이스 시대를 연 ‘미완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흘렀습니다.
그날의 아쉬움이 오늘 이렇게 큰 성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연구진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겠습니까. 작은 오차 하나를 잡기 위해 다시 계산하고 또 시험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집념이 오늘 누리호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지난 7월 국가우주위원회에서 2030년 소형 달 착륙선 발사와 고흥을 포함한 남해안 우주항공 산업벨트 구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우주강국 구상이 차질 없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고흥의 하늘을 올려다보던 저에게 우주는 한없이 먼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 고흥의 하늘이 대한민국이 달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불꽃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을 위해 애써주신 연구진과 기술진, 그리고 우주센터와 함께 살아오며 발사 때마다 불편을 감내하고 협조해주신 고흥 주민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흥이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심장으로 더욱 힘차게 뛰기를 바랍니다.
송영길(SONG, Young Gil) retweeted
<전세사기 피해자의 빠른 일상 회복을 돕겠습니다>
오늘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11월 13일부터 피해자가 경·공매 등을 거쳐도 보증금의 3분의 1을 회수하지 못한 경우, 부족한 금액을 보전합니다. 신탁사기 등 경·공매를 통한 보증금 회수가 어려운 피해자에게는 절차가 끝나기 전에 먼저 지원합니다.
피해자들이 절차와 시간을 기다리느라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늦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주거 안정과 빠른 회복을 뒷받침하겠습니다.
n.news.naver.com/article/421…
[광주 군공항 조기 이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오늘 광주 군공항 조기 이전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휴일임에도 국회의원회관을 찾아주신 무안 주민들을 비롯한 전남광주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안공항이 위치한 망운(望雲)면은 ‘구름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지명 그대로, 어쩌면 공항을 품은 것이 망운면의 숙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 인상적인 이름입니다. 이제 무안국제공항과 광주 군공항 문제를 지역 간 갈등이 아니라 전남광주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광주 군공항 이전은 단순히 군 시설 하나를 옮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광주 군공항 부지를 반도체를 비롯한 미래산업의 거점으로 만들고, 무안국제공항의 경쟁력을 키우며, 전남광주의 산업과 교통, 에너지와 지역발전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AI와 반도체 산업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광주 군공항 부지를 호남권 반도체 산업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돼야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영광 한빛원전을 비롯한 호남의 에너지 기반과 미래 산업전략도 함께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군공항 이전에도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 2028년 중반으로 예정된 임시 이전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라고 주문한 만큼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합니다.
무안국제공항과 군공항의 관계도 열린 자세로 검토해야 합니다. 민간공항과 군공항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무안공항을 어떻게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지역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은 무엇인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군공항만 덩그러니 옮기는 방식이 아니라 전남광주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임시 분산배치의 실효성과 주민 수용성, 무안국제공항의 발전방안까지 꼼꼼히 따져보겠습니다.
오늘 발제를 맡아주신 최영태 교수님과 탁영환 원장님, 토론에 함께해주신 김태곤 교수님, 임소연 기자님, 김대현 보좌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온 귀한 의견을 잘 새겨 전남광주와 대한민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겠습니다.
v.daum.net/v/202610051543438…
[10·4 남북공동선언 19주년, 다시 길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은 10·4 남북공동선언 19주년입니다.
19년 전, 노무현 대통령께서 군사분계선을 직접 걸어 북녘 땅을 밟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늘길을 연 지 7년 만에, 이번에는 육로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틀 뒤 남북은 10·4 공동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서해에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만들고, 해주와 개성, 인천을 연결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군사적 충돌의 바다를 평화와 경제협력의 바다로 바꾸자는 구상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천시장으로 일하며 인천의 항만과 물류, 개성의 산업기반, 해주의 항만을 잇는 서해경제의 대동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금 그 약속이 더욱 절실합니다.
지난달 DMZ 지뢰 폭발로 25사단 장병 세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지금도 MDL 일대에는 훼손된 군사분계선 표지판과 남북이 다르게 인식하는 지점들이 있고, 땅속에는 보이지 않는 지뢰가 묻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작은 오판과 우발적 충돌은 남북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칫 세계적인 군사충돌, 제3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지키는 일은 이상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안보입니다.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 군사당국의 연락과 협의가 계속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MDL과 NLL을 둘러싼 분쟁, 군사분계선 표식과 지뢰 문제, 우발적 월선과 충돌을 막기 위한 협의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DMZ 위험지역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와 공동 안전관리도 논의해야 합니다.
19년 전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군사분계선 앞에서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한 걸음이 필요합니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막혀 있어도 대화의 바늘구멍 하나라도 뚫어야 합니다.
길이 막혔다면 다시 길을 내야 합니다.
10·4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검찰청 폐지의 지옥문은 무고한 국민이 아니라 권한을 남용한 자들에게 가장 먼저 열려야]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78년 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함께 행사해온 검찰청 체제가 끝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출범했습니다. 중대범죄수사청은 수사를,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합니다.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도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국회는 신속히 인사청문 절차를 진행해 새 제도의 출범 초기부터 중수청의 지휘체계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는 만큼, 보완수사요구권과 기관 간 협력체계를 제대로 작동시켜 수사 공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없애야 합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처럼 새로운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수사 공백은 없는지, 국민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되는지 냉정하게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즉시 보완해야 합니다.
그러나 검찰청이 사라지면 국민이 사기를 당하고, 안전벨트가 없어져 ‘지옥문이 열린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해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는 거짓 선동입니다. 검찰청이 사라진 것이지 수사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한 기관에 편중돼 있던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있던 시절은 과연 국민에게 천국이었습니까.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는 허위자백을 토대로 당시 15세 청소년을 기소해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했고, 진범이 검거된 뒤에도 검찰은 과오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는 검찰이 가출청소년 5명을 새로운 범인으로 지목해 기소했지만 모두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증언한 기존 피고인까지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했습니다.
장자연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까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다시 들여다봐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검찰 스스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과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가장 강력한 힘은 기소권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수사하고 기소할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힘, 바로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였습니다. 법 집행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었습니다. 그 힘이 정치 권력과 결합할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우리는 정치검찰 정권의 폐해를 통해 이미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 검찰청 폐지의 일등공신들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했습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검사의 책무였습니다. 그 원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검찰청이 오늘날 국민의 불신 속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까지 왔겠습니까.
저도 사법연수원 시절 잠시 검사의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접했던 검사 선서로 오늘날 검찰청 폐지를 자초한 정치검찰 권력에 묻겠습니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였습니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건희와 최은순에 대한 수사는 권력과 아무 관계없는 국민의 사건을 수사할 때와 똑같은 잣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검사였습니까? 자기 조직의 잘못에도 남에게 들이대던 것과 같은 칼날을 들이댔습니까?
저는 오래전부터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분리하고, 수사와 기소를 독립된 기관이 맡아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입니다. 검찰청 폐지가 끝은 아닙니다. 중수청이 또 다른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되고, 공소청 역시 선택적 기소라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두 기관 모두 민주적 통제와 인권보호 원칙 아래 놓여야 합니다.
저 역시 검찰권이 한 사람의 삶과 명예를 얼마나 무겁게 짓누를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래서 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검찰청 폐지는 개혁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옥문이 열린다면 그 문이 향해야 할 곳은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이들입니다. 이제 그 진실을 밝히고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을 묻는 문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칼이 되고 누구에게는 방패가 되는 사법체계를 끝내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지키며 누구에게나 같은 법이 적용되는 형사사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검찰청 폐지의 의미이자 우리가 완성해야 할 검찰개혁입니다.















































